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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도덕경 제1장 왕필 주에 대한 해석 - 노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것들 (4)

산양 왕필 주 도덕진경 1장 왕필(山陽 王弼, AD226~249) 지음 / 2024년 7월 초적 풀이

▲ [노자1-1] 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 가도(可道)의 도(道)는 상도(常道)가 아니요 가명(可名)의 이름[名]은 상명(常名)이 아니다.
[왕필주] 可道之道,可名之名 ,指事造形,非其常也。故不可道,不可名也。
말할 수 있는 도와 이름할 수 있는 이름은 (다스리는) 일을 가리키고 형상을 만들어내므로*(1) 그러한 도와 이름은 상(常)*(2)이 아니다. 그러므로 (도를) 말할 수도 없고 이름할 수도 없다. *(3)

*(1) : 말해질 수 있는 것[可道]이 아무리 성대하여도 천지를 주관하기에는 부족하고, 형상이 있는 것[有形]이 아무리 거대하여도(극에 달해도) 만물을 거두어 간직하기(수용, 포용, 통솔하기)에는 부족하다. (노자지략)
*(2) : (불언으로 변화시키는 성인처럼) 밝게 빛나지도 어둑하지도 않고, (무물을 사용하는 하늘처럼) 따뜻하지도 서늘하지도 않은 것이, 이 상(常)이라는 것이다. ~ 도는 형상이 없고 상(常)에도 매이지 않아서 이름을 붙일 수 없으니 무명(無名)을 상(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도상무명(道常無名)이라 한 것이다. (노자(도덕경)55장, 노자32장 왕필주)
*(3) : 노자 도편에 이르기를 "자를 지어 도라고 한다 [字之曰道]", "그것을 일러 유현하다(아득히 가물거린다) [謂之曰玄]"라고 (말)했지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런즉 그것을 말하는 자는 그 상(常)을 잃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자는 그 참됨[眞, 실상]에서 떠나고(멀어지고), 그것을 (일부러) 하는 자는 그 천성[性]을 망가뜨리고 그것을 틀어잡는 자는 그 원형[原]을 잃는다. 이 때문에 성인은 말을 주된 것으로 삼지 않는즉 상(常)에 어긋나지 않고, 이름을 상(常)이라 여기지 않은 즉 그 참됨[眞, 본질]에서 멀어지지 않으며, 함(일부러 베풂)을 일삼지 않은 즉 (백성의) 천성을 망가뜨리지 않고, 틀어잡아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으므로 그 원형을 잃지 않는다. 그런즉 '노자'의 글을 분변하여 따지려고(힐문하려고) 하는 자는 그 뜻(취지)을 놓칠 것이요, 이름으로 따지려고(책문하려고) 하는 자는 그 뜻(의의)과 어긋날 것이다.

그러므로 대상(大象)을 잡으면 천하가 가고, 대음(大音)을 쓰면 풍속이 바뀐다는 것이다. 무형(無形) 곧 대상(大象)이 창달하여 천하가 비록 (제대로) 갈지라도 (사람들은) 능히 그러한 줄 알아채지 못하고, 희성(希聲) 곧 대음(大音)이 도달하여 풍속이 비록 바뀔지라도 (사람들은) 능히 그러한 줄 변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늘은 다섯 가지 물건[五物]을 낳아도 무물(無物)을 쓰임으로 삼고, 성인은 다섯 가지 가르침[五教]을 행해도 불언(不言)을 교화(의 방법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상도(常道)가 아니요 이름지어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상명(常名)이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라고 한 것이다. (노자지략)

[노자지략 원문 발췌 편집]
執大象則天下往 無形暢 天下雖往 往而不能釋也 是故 天生五物 無物爲用​​ 是以 名可名 非常名也
用大音則風俗移 希聲至 風俗雖移 移而不能辯也 是故 聖行五教 不言爲化 是以 道可道 非常道也

 

▲ [노자1-2] 無名天地之始,有名萬物之母。 무명은 천지의 비롯이요 유명은 만물의 어미이다.
[왕필주] 凡有皆始於無, 故「未形」、「無名」之時則爲萬物之始, 及其「有形」、「有名」之時,則長之育之,亭之毒之,爲其母也。 言道 以無形無名始成萬物, 以始以成而不知其所以 玄之又玄也。
무릇 유(有)는 모두 무(無)에서 비롯된다.*(4) 그러므로 아직 형상이 없고(드러나 보이지 않고) 이름이 없는(이름을 붙일 수 없는) 때가 만물의 비롯이 되고*(5), 그것에 형상이 생기고 이름이 생기는 때에 이르면 키우고 기르며 먹이고 여물게 하니 그 어미가 된다. 도는 무형과 무명으로 만물을 낳고 이룬다.*(6) 그로써 비롯되고 이루지만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유현하고도 유현하다고 말한 것이다.*(7)

*(4) : 천하 만물은 유(有)에서 나오고 유는 무(無)에서 나온다. (노자40장)
*(5) : 도는 항상 무명(無名)이다. 도(에)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 (道常無名@노자32장)
섞여 이루어진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하늘·땅보다 먼저 생겼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자를 지어 도(道)라고 하였다. ~ 무릇 이름 짓는 것은 형상을 규정함으로써 하는데, 섞여 이루어져 형상이 없으니 규정이 불가하여(규정되지 않으므로)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노자25장 원문 및 왕필주)
*(6) : 무릇 만물이 생겨나는 까닭과 공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반드시 무형(無形)에서 생겨나고 무명(無名)에서 말미암으니 무형·무명이 만물의 종조(근원)이다. (노자지략)
*(7) : 도는 낳고 덕은 기른다. 하고서도(베풀고도) 제것으로 하지 않으니, 덕이 있지만 그 주인을 알지 못하며, 그윽하고 어두운 곳[幽冥]에서 나왔으니 이 때문에 그것을 일러 현덕(玄德)이라고 한다. (노자지략)

 

▲ [노자1-3] 故常無欲,以觀其妙;그러므로 항상 무욕하면 그 묘함을 보고
[왕필주] 妙者,微之極也。 萬物 始於微而後成, 始於無而後生。 故常無欲空虛,可以觀其始物之妙。
묘함은 아주 작음[微]*(8)의 극한이다. 만물은 미(微)에서 비롯된 뒤에 이루고 무(無)에서 비롯된 뒤에 생겨난다. 그러므로 항상 무욕*(9) 공허하면 만물을 일으키는(시작하는) 묘함을 볼 수 있다.

*(8) : 미(微)라는 것은 어스름하고 은미하여[幽微] 눈으로 볼 수 없음에서 취했다. (노자지략)
*(9) : (도는) 만물을 입히고 기르지만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니 항상 욕심(바람)이 없어[常無欲] 작다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노자34장)
만물은 모두 도로부터 말미암아 생겨나지만, 이미 생겨나서는 그 말미암은 곳을 알지 못한다. 천하가(이 세상이) 항상 욕심이 없는[常無欲] 때에는, 만물은 저마다 제자리를 얻는 바, 마치 도가 만물에게 베푸는 것이 없는 것 같으므로 작다고 이름한 것이다. (노자34장 왕필주)
사람들이 능히 도의 늘 그러한 운행[常行]을 알게 된다면 날로 현묘(玄妙)함에 밝게 통달할 것이다. (노자55장 하상공주)

 

▲ [노자1-4] 常有欲,以觀其徼。항상 유욕하면 그 최종 귀결(돌아가 끝마침)을 본다
[왕필주] 徼,歸終也 凡有之爲利,必以無爲用。 欲之所本,適道而後濟。 故常有欲,可以觀其終物之徼也。
교(徼)는 귀결[歸終, 끝으로 돌아감, 돌아가 끝마침]이다. 무릇 유(有)가 이로운 것이 되는 것은 반드시 무(無)를 쓰임으로 삼아서다.*(10) 욕심의 뿌리가 되는 것은 도를 향해 나아간(도에 들어맞은) 뒤에 구제된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하고자 함)이 있으면 (완성 단계의) 만물(사물)이 돌아가 끝마치는 것을 볼 수 있다.*(11)

*(10) : 유(有)가 이로운 것이 되는 까닭(이유, 원인)은 무(無)의 쓸모됨 때문이다. (노자11장)
근본[無]을 지키면서 말단[有]을 추구해야 말단의 폐해를 막고 말단을 살릴(보존·거양할) 수 있다. (노자지략, 숭본식말)
성인이 무위(無爲)·무사(無事)·무욕(無欲)·호정(好靜)하니, 백성이 스스로 변화하고 부유·질박·정직해진다. 이것이 바로 숭본이식말(崇本以息末)(사례)이다. (노자57장 왕필주)
*(11) : (법가, 명가, 유가, 잡가와 달리) 노자의 글은 끝마침[終]에 근거하여 비롯[始, 시작]을 증명하고 비롯[始]을 근본으로 하여 끝마침[終]을 다한다. (길을) 열되 도달시키지 않고 길잡이 노릇은 하되 억지로 이끌지 않으며, 탐구한 뒤에 그 뜻의 궁극에 다다르고, 추론한 뒤에 그 이치를 따져 깊이 생각하며, 사물의 비롯(시원)을 잘 추적하여 그 논의를 시작하고 그 귀결을 밝혀 글을 마친다. ~저 길이 비록 다르더라도 반드시 돌아가는 곳을 동일하게 하고, 궁리(모색)가 비록 백가지이더라도 반드시 다다른 곳을 균일하게 하여, 귀착점이 일치됨을 근거로 지극한 이치를 밝힌다.

하늘이 이것[무물(無物)]으로 하지 않으면 만물을 낳을 수 없고, 다스림을 이것[불언(不言)]으로 하지 않으면 공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옛것과 오늘날의 것이 통하고 마침[終]과 비롯[始]이 같으며 옛것[古]을 잡으면 오늘날의 것[今]을 제어할 수 있고, 오늘날의 것을 증험하면 옛 비롯[古始]을 알 수 있으니 이는 이른 바 "상[常]"이라는 것이다. (노자지략)

 

▲ [노자1-5] 此兩者同出而異名,同謂之玄,玄之又玄,衆妙之門。이 둘은 같이 나와 이름이 다르다. 같이 그것을 일러 유현하다고 말한다. 유현하고도 유현하여 뭇 묘함이 나오는 문이다. (이 둘은 비롯(始)과 어미(母)로서 현(玄)에서 같이 나왔으나 베푸는 곳이 달라 머리에 있으면 비롯(始)이요 끝에 있으면 어미(母)라는 다른 이름을 갖는다. 같이 그것을 일러 유현하다(玄)고(들) 말하며, 유현하고도 유현하여 뭇 묘함이 나오는 문이다.)
[왕필주] 兩者,始與母也(始與無也)。同出者,同出於玄也。 異名,所施不可同也。在首則謂之始,在終則謂之母。 玄者,冥也,默然無有也。始母之所出也,不可得而名, 故 不可言同名曰玄 而言謂之玄者 取於不可得而謂之然也。 謂之然則不可以定乎一玄而已,則是名則失之遠矣。 故曰,玄之又玄也。 眾妙皆從同而出,故曰眾妙之門也。
양자(兩者)란 비롯[始]과 어미[母]이다. 동출(同出)이란 현(玄)에서 같이 나왔다는 뜻이다. 이명(異名)은 베푸는 곳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머리에 있으면 그것을 일러 비롯[始]이라 말하고, 끝에 있으면 그것을 일러 어미[母]라고 말한다. 현(玄)이란 어둡고 고요하며, 유(有)가 없는 상태이고, 비롯과 어미가 나온 곳이다. 현(玄)에다 이름을 붙이지 못하므로 같이 이름하여[名] 현(玄)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일러[謂] 유현하다[玄]라고 말한 것은 '그것을 일러[謂] 그러하다고 말할 수 없음'에서 취한 것임을 말한다.*(12) 그것을 일러[謂] 그러하다고 말하(려)면 현(玄) 하나로 규정(확정)할 수 없을 (그것을 일러 유현하다[謂之玄]라고 할 수 없을) 따름인 즉, (그렇다고) 이에 이름을 붙이게 된다면 (오히려) 그것(진의)과 더욱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유현하고도 유현하다고 말한 것이다. 뭇 묘함은 모두 같음을 좇아(같이 현(玄)으로부터) 나오므로 뭇 묘함의 문이라고들 말한다.*(13)

*(12) :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려면 그것(대상)의 형상을 규정함으로써 하고, 어떤 것을 일러[謂] 그러하다고 말하려면 그것에 대한 (나의) 탐색·탐구를 다해야(그 궁극에 이르러야) 하는 바, 도(道)는 형상이 없어 이름을 붙일 수 없을 뿐더러, 도(道, 만물이 말미암는 바)와 현(玄, 온갖 묘함이 나오는 곳)은 또한 (나의) 탐색·탐구가 그 궁극에 달하지 못하는 것들이라서도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그것을 일러 그러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도(道)라고 일컫고(稱하고) 현(玄)이라고들 일러[謂] 말하지만 (왕필의 논리에 따르면 그럴 수 없는 바),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그 궁극에 달하지 못하므로) 부연 설명하여, 현(玄)을 일러 '유현하고도 유현하다' 라고 했고 도를 일컬어 '역중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노자지략 요약 - 초적의 주관적 편집)

이름[名]이란 저것을 규정[定]하는 것이요 일컬음[稱, 호칭]이란 일러 말함[謂]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름[名]은 저쪽(대상)에서 생겨나고 일컬음[稱]은 내게서 나간다. 그러므로[] 무물이불유(無物而不由, 어떤 것이면서 그것이 말미암지 않음이 없는 것)로부터 훑어가면(섭렵해 가면), 그것(궁극)을 일컬어[稱하여] 도(道)라고(들) 말[]하고, 무묘이불출(無妙而不出, 묘하면서 그것이 나오지 않음이 없음)로부터 탐구해 들어가면, 그것(궁극)을 일러[謂] 현(玄)이라고(들) 말[]한다. 묘함은 현(玄)에서 나오고 만물(온갖 것)은 도(道)로부터 말미암는다. ~ '낳되 제것으로 하지 않고 하되 기대지 않으며 자라게 하되 간섭하지 않음'은 덕이 있어도 주인(노릇함)이 없는 것이니 현(玄)의 덕이다. 현(玄)은 일러 말함[謂]이 심오한[深] 것이고, 도(道)는 일컬음[稱]이 큰[大] 것(호칭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명호(名號)는 (저쪽의) 형상에서 생겨나고 일컬음과 일러 말함[稱謂]은 (나의) 탐색에서 나온다. 명호(名號)는 헛되이(공허하게) 생겨나지 않고, 일컬음과 일러 말함[稱謂]도 헛되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예로부터) 명호(名號)는 (저쪽 대상으로부터 나오는) 그 뜻[旨]을 크게 잃고, 일컬음과 일러 말함[稱謂]은 (내가 찾아 들어가는) 그 궁극에 다다르지 못한다. 이 때문에 현(玄)을 일러[謂] '유현하고도 유현하다'라고 했고 도를 일컬어 '역중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다' 라고 한 것이다. (노자지략)

[노자지략 원문 발췌 편집]
名也者,定彼者也 名生乎彼 故 涉之乎無物而不由,則稱之曰道;眾由乎道
稱也者,從謂者也 稱出乎我 故 求之乎無妙而不出,則謂之曰玄。妙出乎玄
「道」,稱之大者也 名號生乎形狀 名號不虛生 故 名號則大失其旨 是以 稱道則「域中有四大」,
「玄」,謂之深者也 稱謂出乎涉求 稱謂不虛出 故 稱謂則未盡其極 是以 謂玄則「玄之又玄」也。

*(13) : 그것에 이름을 붙이려 해도 능히 들어맞게 하지 못하고 그것을 일컬으려 해도 능히 다하지(그 궁극에 다다르지) 못한다. 이름[名]에는 반드시 나뉘는 바(다른 것과 구분됨)가 있고, 일컬음[稱]에는 반드시 말미암은 바가 있다. 나뉘는 바가 있으면 (구분·분류의 경계에 있는 것 또는 전체를) 아우르지(겸용·포용하지) 못함이 있게 되고, 말미암은 바(원인이 되는 곳, 연유)가 있으면 다하지(그 궁극에 다다르지) 못함이 있게 된다. 아우르지 못하면 그 참됨(실상)과 크게 달라지고, 다하지 못하면 (궁극에 다다르지 못한 것은) 이름을 붙일 수 없나니 이는 부연하여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무릇 도(道)라는 것은 만물이 말미암은 곳에서 취했고, 현(玄)이라는 것은 '그윽한 어두움(幽冥)'이 나오는 곳에서 취했고, 심(深)이라는 것은 심오한 것을 탐색하여도 구명하지 못함에서 취했고, 대(大)라는 것은 모두 휩싸서 하나로 묶으려 해도 끝내 할 수 없음에서 취했고, 원(遠)이란 것은 아득히 멀어 다다를 수 없음에서 취했고, 미(微)라는 것은 어스름하고 은미하여 볼 수 없음에서 취했다. 그런즉 도(道), 현(玄), 심(深), 대(大), 미(微), 원(遠)이라는 말은 저마다 그 뜻(義)이 있지만 그 궁극에 다다르지는 못하는 것들이다. (노자지략)

[노자지략 원문 발췌 편집]
名之不能當,名必有所分,有分則有不兼,不兼則大殊其眞,
稱之不能旣。稱必有所由。有由則有不盡。不盡則不可以名,此可演而明也

“道”也者,取乎萬物之所由也;
“玄”也者,取乎幽冥之所出也;
“深”也者,取乎探賾而不可究也;
“大”也者,取乎彌綸而不可極也;
“遠”也者,取乎綿邈而不可及也;
“微”也者,取乎幽微而不可睹也。
然則 “道”、“玄”、“深”、“大”、“微”、“遠”之言,各有其義,未盡其極者也。
본 자료(초적 작성, 노자 도덕경 1장 왕필 주 해석)는 출처를 명기하여 부분 인용 가능하나 전체 전재는 불가합니다.

▣ 해설

△ 노자도덕경 제1장 요약

천하나 나라를 경영함에 여러 방도가 있지만 특정한 방도(왕필은 법가, 명가, 유가, 잡가를 사례로 들음)를 내세우면(고집하면) 여러 폐단이 있음을 인식해야 하고, 이름(대상을 규정함)으로써 세상의 이치를 파악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폐단을 인식하여, 이름에 갇히지 말고 그 너머의 세계로 열린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하면 인간을 (특정) 틀에 가두거나 타고난 성품을 훼손하는 일이 없이, 스스로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현묘함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현묘함을 보지 못하는 자들도 (의욕적으로) 여러 길을 모색한 뒤에는 결국 같은 귀착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니 현묘하고도 현묘한 문으로 들어서라는 것이다.


△ 초적 평(評)

왕필(의 도덕경 주와 노자지략)은 노자의 주옥같은 - 언듯 보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구슬처럼 보이는 - 말들을 잘 꿰어 멋진 작품으로 다시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왕필의 노자도덕경 주는 수많은 노자 주석서 가운데 발군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왕필의 도덕경은 노자의 구슬 가운데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보충하고 일부는 다시 가공하여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1. 첫째, 백서본에서 구분되어 쓰인 항(恒)과 상(常)을 상(常)으로 통합하면서 항(恒)을 상(常)으로 (확대) 해석한 곳이 있는 점.
  2. 둘째, 노자 백서본은 무(無)와 유(有)를 거의 동격으로 다루고 있으나 왕필(본)은 무(無)와 유(有)를 종속관계로 설정한 점.
  3. 셋째, 현(玄)과 현덕(玄德)을 중시하여 노자38장의 인(仁)에 (백서본에는 없는) 하덕으로서 인(仁)을 추가하여 인덕(仁德)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현덕과 대비시키며 인(仁)을 승격시킨 점. (역으로 인(仁)을 살려내기 위해 현(玄)을 중시했다고 볼 수도 있음)
  4. 넷째, 백서본의 유욕자(有欲者)를 유도자(有道者)로 바꿔 유욕(有欲)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차단한 점.
  5. 기타, 도는 크다(大)는 것에 집착(천착)하여 노자32장의 도는 작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노자67장의 나는 크다를 내 도는 크다로 바꾼 점 등등.
왕필의 이러한 견지(입장)를 감안하여 노자도덕경1장에 대한 왕필의 주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왕필본]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
	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同出而異名,同謂之玄。玄之又玄,衆妙之門。 

[종합판]	
	道,可道也,非恆道也。
	名,可名也,非恆名也。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
	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同出而異名,同謂之玄。玄之又玄,眾妙之門。


[백서본]	
	道可道也,非恆道也。
	名可名也,非恆名也。
	無名萬物之始也;
	有名萬物之母也。
	故
	恆無欲也,以觀其眇;
	恆有欲也,以觀其所噭。
	兩者同出,異名同胃,玄之又玄,眾眇之門。 
	
도덕경 1장(백서본 45장)은 백서본이냐, 왕필본이냐, 끊어 읽기를 어떻게 하느냐 등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왕필은 위지현(謂之玄)에 대하여 노자지략 등에서 사변적으로(현학적으로) 설명하였으나 백서본에는 없는 (왕필본에 추가된) 문구이다.

'이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는 저마다 자신의 논설을 펼치고 사람들은 그 어지러운 것(견해)을 찬미한다. 어떤 이는 말을 이리저리 돌리고 (진부한 말을 늘어놓고) 어떤 이는 그 논설(견해)을 비난·조롱하며, 훤히 깨달은 듯 하지만 (멋대로 추측하여) 어둡고(애매모호하고), 분별 있는 듯하지만 어지러운 것은, 모두 이(잎가지만 보고 뿌리는 찾아보지 않음)로 말미암는다.' [노자지략]

노자지략의 위 말은 (왕필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노자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라는 것이다. 필자(초적)는 노자도덕경이나 왕필 주를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노자의 쉬워 보이는 말들을 실행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은 안다. 어려워 보이는 말들은 (화두 삼아) 그대로 놔두고(구구순숙을 기대하며) 노자의 취지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인지, 어려운 부분들을 학술적으로(현학적으로) 풀이하는 것(을 섭렵하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인지는 개인의 취향에 달렸다고 본다.

강을 건너면 배를 버린다는 말이 있다. 강을 건널 때 왕필(도덕경 주)이라는 배가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배를 버려야 진정한(본래면목의) 노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언어와 논리의 천재(마술사) 왕필을 넘어서기는 결코 쉽지 않으리라 본다. (일찌기) 왕필처럼 노자를 해부하고 해석하고 재구성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2024-07-13 초적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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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링크)


■ http://ctext.org/zh

§ 링크 : 《王弼註 道德經 영인본》,  《王弼註 道德經 텍스트》 《正統道藏》本 - 산양 왕필주 도덕진경(山陽 王弼註 道德真經),
§ 링크 : 《馬王堆·老子甲》 백서갑본, 
§ 링크 : 《馬王堆·老子乙》 - 백서을본
§ 링크 : 《郭店·老子》 - 죽간본
§ 링크 : 《老子河上公章句》 四部叢刊初編 本 - 노자하상공장구
§ 링크 : 《老子微旨例略》 - 노자지략


■ http://zh.wikisource.org/

§ 링크 : 道德經 (王弼本)  - 華亭張氏原本- 《四部備要》本 - 왕필 주 도덕경
§ 링크 : 老子 (帛書本)- 백서본 
§ 링크 : 老子 (帛书校勘) - 백서본 교감판
§ 링크 : 老子 (匯校版) 종합판 通行本 - 노자 통행본


■ http://www.chineseclassic.com/

§ 링크 : 老子道德經河上公章句 世德堂刊本 - 노자도덕경 하상공장구
§ 링크 : 老子微旨例略 - 노자지략


■ photoseoul.tistory.com

§ 링크 : 노자지략(老子旨略) (2022봄) 왕필의 노자미지례략 번역 by 초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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