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노자미지례략(老子微旨例略)』 왕필 (山陽 王弼, AD226~249) 지음 / 2022년 4월 초적 풀이
왕필은, '노자미지례략(老子微旨例略)'을 지어 노자의 은미한 뜻을, 사례를 들어 간략히 설명하였다. 왕필의 노자에 대한 이해, 논리, 해박한 지식, 글솜씨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조조의 아들 손자가 왕노릇하던 시절, 왕필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목차] 임의로 단락을 나누고 번호를 매겨 요약문을 덧붙임
1. [무형(無形), 무명(無名)] ...... 무형과 무명이 만물의 근본 2. [대상(大象), 대음(大音)] ...... 대상무형과 대음희성으로 노자 핵심사상 총정리 3. [명칭(名稱)] ......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어 호칭으로 부연설명이 가능한 것들 4. [요지] ...... 도, 현덕, 무위, 숭본식말, 교술에 대하여 등 5. [제자백가와 노자] ...... 제자백가는 특정방법론 제시, 노자는 처음과 끝을 거론하여 탐구 추론토록 한다는 것 6. [형명(形名)] 명칭(名稱)2 ...... 공(성과)의 형상(외양)과 이름, 현덕(玄德, 베풀면서 드러나지 않는 덕) 7. [숭본식말(崇本息末) 사례] : 성지(聖智) 인의(仁義) 교리(巧利) 8. [성지(聖智)] ...... 성지와 현소 9. [인의(仁義)] ...... 인의와 포박 10. [교리(巧利)] ...... 교리와 소사과욕 11. [결어] ...... 숭본식말, 성공(聖功)과 인덕(仁德) 살리기 |
- [무형(無形), 무명(無名)] / ToTop
夫物之所以生,功之所以成,必生乎無形,
[노자41장]
[죽간본] 大音希聲,天象亡形 대음은 소리가 없고 천상은 형상이 없다
[백서본] 大音希聲,天象無刑 대음은 소리가 없고 천상은 형상(또는 틀)이 없다
[왕필본] 大音希聲;大象無形 대음은 소리가 없고 대상은 형상이 없다
───────────────────────────────────────
[초적주] 죽간본과 백서본의 천상(天象)이 왕필본에서 대상(大象)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노자지략에서 각광받은 용어로는 대음(大音), 대상(大象), 현(玄), 모(母), 상(常) 등이 있다. 노자 원문에 무형(無形)이라는 표현은 노자41장에 나온 대상무형(大象無形)이 유일하다. 왕필은 노자주에서 무형(無形)이란 표현을 다수 사용하였다.由乎無名。
[노자1장] 無名天地(萬物)之始 有名萬物之母무명 은 천지(만물)의 비롯이요 유명은 만물의 어미이다.
[노자32장] 道常無名
도는 항상무명 이다. 도는 무명을 상으로 삼는다.
[왕필주] 道無形不繫常 不可名 以無名爲常 故曰道常無名也
도는 형상이 없고 상(常, 늘 그러함)에도 매이지 않아서 이름을 붙일 수 없으니 무명(無名)을 상(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도상무명(道常無名)이라 한 것이다.
[초적주] 왕필은 도상무명(道常無名)을 '도는 무명을 상으로 삼는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참고로, 백서본의 도항무명(道恆無名)에 따르면 도는 항상 무명이다無形無名者,萬物之宗也。不溫不涼,不宮不商;
[노자14장] [왕필주] 無形無名者,萬物之宗也。雖今古不同~
무형·무명은 만물의 종조 이다. 비록 오늘날과 옛날이 같지 않고 세월이 흘러 풍속이 바뀌었지만, 예로부터 이것으로 말미암지 않고서 그 다스림에 성공한 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옛날의 도를 잡아 오늘날의 사물을 제어한다. 태고는 비록 멀지만 그 도는 존재하므로 비록 오늘에 살아도 옛날의 비롯됨을 알 수 있다.聽之不可得而聞;
[노자14장]
視之不見名曰微 聽之不聞名曰希 搏之不得名曰微夷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니 이름하여 희(希)라 한다.視之不可得而彰;
[노자14장]
視之不見名曰夷(微) 聽之不聞名曰希 搏之不得名曰微(夷)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니 이름하여 미(微)라고 한다體之不可得而知
[노자14장]
視之不見名曰微 聽之不聞名曰希 搏之不得名曰微夷 此三者不可致詰 故混而爲一 其上不皦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으니 이름하여 이(夷)라고 한다
───────────────────────────────────────
[노자14장 하상공주]하상공은 시·청·박을 각각 무색·무성·무형에 연결 지어 설명하였다
눈┌視之不見名曰微 ┐┌ 무색(無色)-무채색(無采色) ┐[하나] ┌불교불매┐┌無狀之狀 ┐
귀├聽之不聞名曰希 ┼┼ 무성(無聲)-무음성(無音聲) ┼[하나] ┤불가명야├┤無狀之狀 │
손└搏之不得名曰夷 ┘└ 무형(無形)-무형체(無形體) ┘[하나] └복귀무물┘└無物之象 ┘(+),味之不可得而嘗。故
[노자14장]
[왕필주] 귀는 무성무향(無聲無響)에 나머지는 무상무상(無狀無象)에 대응시킴
눈[目]┌視之不見名曰微 ┐┌무상무상(無狀無象) ┐[하나] ┌불교불매┐┌無狀之狀 ┐
귀[耳]├聽之不聞名曰希 ┼┤무상무상(無狀無象) ┼[하나] ┤不可名야├┤無狀之狀 │
체[體]└搏之不得名曰夷 ┘└무성무향(無聲無響) ┘[하나] └복귀無物┘└無物之象 ┘
───────────────────────────────────────
[노자지략]왕필은 희성(希聲)은 대음(大音)에, 무형(無形)·무물(無物)은 대상(大象)에 연결지음
● [不溫不涼] 형(形)-상(象)-대상(大象)-사상(四象)-물(物)-(天下)- (天-無物)-명가명비상명
● [不宮不商] 성(聲)-음(音)-대음(大音)-오음(五音)-심(心)-(風俗)- (聖-不言)-도가도비상도
눈┌視之不可得而彰 ┐┌ 상(象)-무형(無形) ┐┌(大象無形) ┬不溫不涼┌不柔不剛
귀├聽之不可得而聞 ┼┤ 음(音)-희성(希聲) ┠┤(大象無形) └하늘無物┴不炎不寒
체├體之不可得而知 ┤│ 물(物)-혼성(混成) │└[大音希聲] ┬不宮不商┌不恩不傷
입└味之不可得而嘗 ┘└ 미(味)-무정(無呈) ┘└ (大象無形) └성인불언┴不皦不昧其爲物也則混成,[노자25장] 有物混成 先天地生
섞여 이루어진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천지보다 먼저 생겼다.爲象也則無形,[노자41장] 大象無形 대상은 형상이 없다. 대상은 무형(無形)이다.
爲音也則希聲,[노자41장] 大音希聲 대음은 소리가 없다. 대음은 희성(希聲)이다.
[노자14장] 聽之不聞名曰希 들으려해도 들리지 않으니 이름하여 희(希)라고 한다.爲味也則無呈。故[노자35장]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도는 입 밖에 내어 말해도 담백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能爲品物之宗主,[노자4장] 道~ 淵兮 似萬物之宗
도는~ 못과 같은 것이 만물의 종주(종조)를 닮았구나苞通(天地),[노자35장] 執大象,天下往。 대상을 잡으면 천하가 간다(귀향한다)
[왕필주] 大象 天象之母也 不寒不溫不涼 故能包統萬物 無所犯傷 主若執之則天下往也
대상은 천상의 어미이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서늘하지도 않으므로,능히 만물을 포용하고 통솔하며, 침범하여 상해를 입히지 않으니, 주인(임금)이 이를 잡으면 천하가 간다고 한 것이다.
[노자14장] [왕필주] 無狀無象,無聲無響,故能無所不通,無所不往
(하나는) (만져지는) 형상도 (보이는) 형상도 소리도 메아리도 없으므로 능히통하지 못하는 곳이 없고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靡使不經也。[노자38장] [왕필주] 何以得德? 由乎道也。 何以盡德? 以無爲用。 以無爲用則莫不載也 故物無焉則無物不經 무엇으로 덕을 얻는가? 도로부터 말미암는다. 무엇으로 덕을 다하는가? 무(無)를 쓰임으로 삼아서다. 무를 쓰임으로 삼으면 싣지 못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무(無)하다면 경유시키지(경영하지) 못할 것이 없다.
무릇 만물이 생겨나는 까닭과 공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반드시 무형(無形)에서 생겨나고 무명(無名)에서 말미암으니 무형·무명이 만물의 종조(근원)이다. 따뜻하지도 않고 서늘하지도 않고 궁(宮) 소리도 아니고 상(商) 소리도 아니며, (귀로)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눈으로) 보려 해도 드러나지 않으며, (몸으로) 겪어보려 해도 알려지지 않고, (입으로) 맛보려 해도 느껴지지 않으니, 그것은 (몸에 닿는) 물(物)로 치면 섞여 이루어진 것이고, (눈에 비치는) 상(象)으로 치면 형상이 없고[無形], (귀로 듣는) 소리[音]로 치면 소리가 없고[希聲], (입으로 맛보는) 맛[味]으로 치면 드러나지 않는 맛이다. 그러므로 능히 만물의 종주가 되고, 하늘을 싸고 땅에 통하여, 어느 것도 (그것을) 거치지(통과하지) 않도록 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이것을 통하여 생성된다) - [대상(大象)-대음(大音)] / ToTop
若溫也則不能涼矣,宮也則不能商矣。形必有所分,聲必有所屬。 故象而形者,非大象也;[노자41장] 大象無形 대상은 형상이 없다
[왕필주] 有形則有分 有分者不溫則炎 不炎則寒 故象而形者 非大象
형상이 있으면 나뉨(구분)이 있게 되고, 구분이 생긴 것은 따뜻하지 않으면 뜨겁고 뜨겁지 않으면 차갑다. 그러므로상(象)이면서 모습이 드러나는 것(형상이 있는 것)은 대상(大象)이 아니다 .音而聲者,非大音也。 然則 四象不形,則大象無以暢;五音不聲,則大音無以至。[노자41장] 大音希聲 대음은 소리가 없다
[왕필주] 聽之不聞名曰希,不可得聞之音也。有聲則有分,有分則不宮而商矣,分則不能統眾,故有聲者非大音也。 귀를 기울여도 듣을 수 없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라고 하였으니, 들을 수 없는 소리라는 것이다. 소리가 있으면 나뉨(구분)이 생기고, 구분이 있으면 궁(宮) 소리이면서 상(商) 소리가 될 수 없으니, 구분하면 능히 무리를 통솔하지 못하므로소리가 있는 것은 대음(大音)이 아니다 .四象形而物無所主焉,則大象暢矣;五音聲而心無所適焉,則大音至矣。[주역-계사상 周易《繫辭上》]
易有太極,是生兩儀,兩儀生四象,四象生八卦,八卦定吉凶,吉凶生大業。~易有四象,所以示也。繫辭焉,所以告也。定之以吉凶,所以斷也。
역에 태극이 있고 이것이 양의를 낳으며 양의는 사상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으며 팔괘는 길흉을 정하고 길흉은 대업을 낳는다. ~역(易)에 사상(四象)이 있기 때문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 이다.~
https://ctext.org/book-of-changes/xi-ci-shang/zh
만약 따뜻하다면 서늘할 수 없고, 궁이라는 소리라면 상이라는 소리가 될 수 없다. 형상은 반드시 나뉘는 바가 있고, 소리는 반드시 속하는 데가 있다. 그러므로 상(象)이면서 (특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대상(大象)이 아니고, 소리[音]이면서 (특정한) 소리[聲]를 내는 것은 대음(大音)이 아니다. 그러나(그런즉) 사상(四象)이 드러나지(보이지) 않는다면 대상(大象)이 창달할(하늘에서 내려올) 방법이 없고, 오음(五音)이 소리가 나지(들리지) 않는다면 대음(大音)이 도달할(이 땅에 영향을 미칠) 방법이 없다. 사상(四象)이 드러나되 사물에 주장하는 바가 없다면 대상(大象)이 창달할 것이요, 오음(五音)이 소리가 나되 마음에 딱 들어 맞는 바가 없다면 대음(大音)이 도달할 것이다.
故執大象則天下往,
[노자35장]
執大象 天下往
대상을 잡으면 천하가 (제대로) 간다
대상을 잡으면 천하만민이 (그에게로) 간다用大音則風俗移也。
[노자28장]
[왕필주] 통나무는 참됨(실상)이다. 참됨이 흩어지면 백가지 행태가 나오고 (여러) 다른 유형이 생기는 것이 마치 (원목을 가공하여 온갖)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성인은 통나무(참됨)가 나뉘고 흩어지는 것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므로 그들을 위해 관장을 세운다. 선함을 스승으로 삼고 선하지 않음을 감계(반면교사)로 삼아풍속을 바꾸어 다시 '하나'로 돌아가게 한다.
[초적주] '노자'나 노자 왕필주에, 대음(大音)을 사용하여 풍속을 바꾼다는 표현이 없다. 노자28장 왕필주에서 관장을 세워~ 풍속을 바꾼다는 표현이 있을 뿐이다. 아마 왕필은 정음(鄭音)을 염두에 두고 대음(大音)으로 풍속을 바꾼다는 설정을 한 게 아닐까 추측된다.無形暢,天下雖往,往而不能釋也;
[노자41장]
大象無形 대상은 형상이 없다. 대상은 무형(無形)이다.希聲至,風俗雖移,移而不能辯也。是故天生五物,[노자41장] 大音希聲 대음은 소리가 없다. 대음은 희성(希聲)이다.
無物爲用;[노자14장]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象
(아 하나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이름할 수 없으며무물 로 다시 돌아간다.
이를 (만질 수 없는) 무상의 상(狀), (볼 수 없는) 무물의 상(象)이라고 한다聖行五教,不言爲化。是以「[노자2장] 聖人~ 行不言之教
성인은~ 말없는(불언의) 가르침을 행한다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也。[노자1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노자지략] 왕필은 대상무형(大象無形)에서 명가명비상명(名可名 非常名)을, 대음희성(大音希聲)에서 도가도비상도(道可道 非常道)를 추론하였다.
───────────────────────────────────────
┌執大象則天下往 / 無形暢 天下雖往 往而不能釋也 ┐-> 是故 ┌天生五物 無物爲用 ┐-▶
└用大音則風俗移 / 希聲至 風俗雖移 移而不能辯也 ┘-> 是故 └聖行五教 不言爲化 ┘▶-> 是以 ┌名可名 非常名┬ 也。▶-> 是以 └道可道 非常道┘
그러므로 대상(大象)을 잡으면 천하가 가고, 대음(大音)을 쓰면 풍속이 바뀐다는 것이다. 무형(無形) 곧 대상(大象)이 창달하여 천하가 비록 (제대로) 갈지라도 (사람들은) 능히 그러한 줄 알아채지 못하고, 희성(希聲) 곧 대음(大音)이 도달하여 풍속이 비록 바뀔지라도 (사람들은) 능히 그러한 줄 변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늘은 다섯 가지 물건[五物]을 낳아도 무물(無物)을 쓰임으로 삼고, 성인은 다섯 가지 가르침[五教]을 행해도 불언(不言)을 교화(의 방법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가 늘 그러한 도는 아니요 이름지어 붙일 수 있는 이름이 늘 그러한 이름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五物之母,不炎不寒,不柔不剛[노자78장]
弱之勝強,柔之勝剛,天下莫不知,莫能行。
여린 것이 굳센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뻣센 것을 이긴다
[초적주] 노자는 유약(柔弱)이 강강(強剛)을 이긴다고 하였으나 왕필은 노자지략에서 불유불강(不柔不剛)을 말하고 있다. 왕필은 노자주에서 유약이 강강을 이긴다는 부분에 대해 주석을 달지 않았다.(+);五教之母,[주역-계사상 周易《繫辭上》]
天尊地卑,乾坤定矣。卑高以陳,貴賤位矣。動靜有常,剛柔斷矣。方以類聚,物以群分,吉凶生矣。在天成象,在地成形,變化見矣。
하늘 높고 땅 낮아 건과 곤이 정해지고, 낮은 것과 높은 것[卑高]이 진열되어 귀천(貴賤)이 자리잡고, 동정(動靜)에 상(常)이 생겨강유(剛柔)가 구분되고 , 방향은 유사한 것으로써 모아지며 만물은 무리로써 나뉘어 길흉이 발생하고, 하늘[天]에서는 상(象)을 이루고 땅[地]에서는 형(形)을 이루니 변화가 드러난다.不皦不昧」,[노자14장] (이 하나는) 그 위가 밝게 빛나지도 않고 그 아래가 어둡지도 않다.
[백서갑본] 一者,其上不收,其下不忽
[백서을본] 一者其上不謬,其下不忽。
[왕필본] 其上不皦 其下不昧
[초적주] 백서본의 하나가 왕필본에서 삭제되었다. 백서본에서 '하나'를 묘사하던 문구는, 노자지략에서 성인[聖]을 묘사하는 문구로 쓰이며 '대음희성' 구축에 활용되었다.不恩不傷。雖古今不同,時移俗易,此不變也,所謂「[노자5장]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성인은 불인하다. 만물을 추구로 삼는다.
[왕필주] 인(仁)은 은혜가 있고 함이 있으니[有恩有爲] 여러 사물이 함께 존재하지 못한다.
[노자60장 백서본] 其神不傷人也 非其申不傷人也 聖人亦弗傷也
[노자60장 왕필본] 其神不傷人 非其神不傷人 聖人亦不傷人
[초적주] 노자60장 백서본에서 '성인이 그를 해치지 않는다'가 왕필본에서 '성인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로 바뀌었다. 백서본의 그는 귀신·신령일 수도 있다.自古及今,其名不去」者也。[노자21장]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예로부터 이제껏 그 이름이 사라진 적이 없어 그로써 만물의 비롯을 살펴볼 수 있다
[왕필주] 至真之極,不可得名,無名則是其名也。自古及今,無不由此而成,故曰,自古及今,其名不去也。 참됨의 극한에 이른 것은 이름을 얻을 수 없으니,이름 없음[無名]이 곧 그 이름이다.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니,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았다' 고 (노자가) 말한 것이다.
다섯 물건[五物]의 어미[무물(無物)을 사용하는 하늘]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뻣세지도 않다. 다섯 가르침[五教]의 어미[불언(不言)으로 교화하는 성인]는 밝게 빛나지도 어둑하지도 않고 은혜를 베풀지도 상해를 입히지도 않는다. 비록 옛날과 지금이 같지 않고 시대에 따라 풍속이 바뀌어도 이것은 변하지 않으니 이른 바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天不以此,則物不生;治不以此,則功不成。 故古今通,終始同,執古可以御今,證今可以知古始,此所謂“常”者也。無皦昧之狀,溫涼之象,故“
[노자14장]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옛날의 도를 잡아 오늘날 있는 것을 제어하고 능히 옛날의 비롯됨을 안다. 이를 도의 벼리라고 한다.
[왕필주] 無形無名者,萬物之宗也。 雖今古不同,時移俗易,故莫不由乎此,以成其治者也。 故可執古之道,以御今之有,上古雖遠,其道存焉,故雖在,今可以知古始也。무형·무명 은 만물의 종조이다. 비록 오늘날과 옛날이 같지 않고 세월이 흘러 풍속이 바뀌었지만,예로부터 이것으로 말미암지 않고서 그 다스림에 성공한 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옛날의 도를 잡아 오늘날의 사물을 제어한다 . 태고는 비록 멀지만 그 도는 (그곳에, 여기에) 존재하(였으)므로 비록 오늘에 살아도 옛날의 비롯됨을 알 수 있다.知常曰明”也。物生功成,莫不由乎此,故“[노자55장]
[왕필본] 知和曰常,知常曰明 조화로움을 아는 것을 상(常, 늘그러함)이라고 하고 상(常)을 아는 것을 밝음(明)이라고 한다.
[왕필주] 物以和為常,故知和則得常也。不皦不昧,不溫不涼,此常也。無形不可得而見,曰明也。 만물은 조화로움을 상(常, 늘그러함)으로 삼으므로 조화로움을 알면 상(常)을 얻게 된다.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으며, 따뜻하지도 않고 서늘하지도 않은 것이, 이 상(常)이라는 것 이다. 형상이 없어 보이지 않음(을 보는 것)을, 노자는 밝음(明)이라고 하였다.以閱眾甫”也。[노자21장]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예부터 이제껏 그 이름이 사라진 적이 없어 그로써 만물의 비롯을 살펴볼 수 있다
하늘이 이것[무물(無物)]으로 하지 않으면 만물을 낳을 수 없고, 다스림을 이것[불언(不言)]으로 하지 않으면 공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옛것과 오늘날의 것이 통하고 마침과 비롯이 같으며 옛것을 잡으면 오늘날의 것을 제어할 수 있고, 오늘날의 것을 증험하면 옛 비롯을 알 수 있으니 이는 이른 바 "늘 그러함[常]"이라는 것이다. (불언으로 변화시키는 성인처럼) 밝게 빛나거나 어둑한 상태가 없고, (무물을 사용하는 하늘처럼) 따뜻하거나 서늘한 상(象)이 없으므로 "늘 그러함[常]을 아는 것을 밝음[明]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만물이 생성되고 공업이 이루어짐에 이것[무물(無物)과 불언(不言)]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나니 그래서 "이로써 중보(만물의 비롯)를 살필 수 있다"라고 하였다.
夫奔電之疾猶不足以, 御風之行猶不足以一息期。
一時周
[노자25장] 周行而不殆,可以爲天地母두루 다니되 위태롭지 않고
[왕필주] 周行無所不至而免殆두루 다님 에 이르지 않는 곳이 없어도 위태롭지 않다.
[하상공주] 道通行天地 無所不入 ~無不貫穿 而不危怠也
도는 하늘에 통하고 땅을 다니며 들어가지 못하는 데가 없고~ 꿰어서 뚫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노자38장] [왕필주] 雖極其大,必有不周,雖盛其美,必有憂患
(유형적인 것이) 아무리 그 크기를 다하여도(제 역량을 다 발휘해도) 반드시두루 미치지 못함 이 있고 (이름이) 아무리 그 아름다움(미명)을 성대하게 하여도 반드시 우환이 생기기 마련이다.善速在不疾,善至在不行。 故可道之盛,未足以官天地; 有形之極,未足以府萬物。 是故
[주역-계사상 周易《繫辭上》]
易无思也,无為也,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其孰能與於此。~唯神也,故不疾而速,不行而至。
역(易)에는 생각이나 함이 없다.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마침내 천하의 연고에 통하니 천하에 가장 신묘한 자가 아니면 그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성인은 깊디깊은 곳까지 다다라 기미(징조)를 탐구하였으니) 신묘하므로(신묘한 경지에 이르렀으므로)내닫지 않아도 빠르고 가지 않아도 다다른다 .
https://ctext.org/book-of-changes/xi-ci-shang/zh嘆之者不能盡乎斯美,詠之者不能暢乎斯弘。[노자38장] [왕필주] 捨其母而用其子,棄其本而適其末, 名則有所分,形則有所止, 雖極其大,必有不周,雖盛其美,必有憂患
그 어미를 버리고 그 아들을 쓰는 것은 근본을 버리고 말단으로 가는 것이니, 이름을 붙이면 나뉘는 바가 있고 드러내면(무형이 아니면) 그치는 바(유한함)가 있다.(유형적인 것이) 아무리 그 크기를 다하여도 반드시 두루 미치지 못함이 있고(이름이) 아무리 그 아름다움을 성대하게 하여도 반드시 우환이 생기기 마련이다.
무릇 번개처럼 빨리 달려도 일시에 두루 미치기에는 부족하고, 바람처럼 빨리 몰아쳐 가도 단숨에 마치기에는 부족하다. 최선의 속도는 내닫지 않음에 있고, 최선의 다다름은 가지 않음에 있다. 그러므로 말해질 수 있는 것[可道]이 아무리 성대하여도 천지를 주관하기에는 부족하고, 형상이 있는 것[有形]이 아무리 거대하여도(극에 달해도) 만물을 거두어 간직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한 까닭에 그것을 찬탄하는 자는 능히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다하지(표현해 내지) 못하고, 그것을 영탄하는 자도 능히 그 크기에 대하여 다 창달하지(표현하여 전달하지) 못한다. - [명칭(名稱)] / ToTop
名之不能當,稱之不能旣。名必有所分,稱必有所由。[노자38장] [왕필주] 捨其母而用其子,棄其本而適其末, 名則有所分,形則有所止, 雖極其大,必有不周,雖盛其美,必有憂患
그 어미를 버리고 그 아들을 쓰는 것은 근본을 버리고 말단으로 가는 것이니,이름을 붙이면 나뉘는 바가 있고 드러내면(무형이 아니면) 그치는 바(유한함)가 있다. (유형적인 것이) 아무리 그 크기를 다하여도(제 역량을 다 발휘해도) 반드시 두루 미치지 못함이 있고 (이름이) 아무리 그 아름다움을 성대하게 하여도 반드시 우환이 생기기 마련이다.
有分則有不兼,有由則有不盡。不兼則大殊其眞,不盡則不可以名,此可演而明也。[노자25장] [왕필주] 무릇 이름 짓는 것은 형상을 정함으로써 하고, 자를 짓는 것은 호칭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하는 바, 도는 무물이불유(無物而不由, 어떤 것이면서 그것이 말미암지 않음이 없는 것)에서 취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는 섞여 이루어진 것 중에서 말할 수 있는 호칭 중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내가 그것의 자(字)를 지어 도라고 한 까닭은, 말할 수 있는 호칭 중에 가장 큰 것을 취한 것인 바, 그 자(字)를 정한 이유(유래)를 따져 물으면 크다는 것에 매이고 크다는 것에 매이면 반드시
나뉨(구분, 구별)이 있게 되고 나뉨이 있게 되면 최고의 그 궁극에 다다름을 놓친다 .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 억지로 이름 지어 크다고 말한 것이다.
이름하려 해도 능히 들어맞게 하지 못하고 일컬으려 해도 능히 다하지(그 궁극에 다다르지) 못한다. 이름에는 반드시 나뉘는 바(다른 것과 구분됨)가 있고, 일컬음에는 반드시 말미암은 바가 있다. 나뉘는 바가 있으면 (구분·분류의 경계에 있는 것 또는 전체를) 아우르지(겸용·포용하지) 못함이 있게 되고, 말미암은 바(원인이 되는 곳, 연유)가 있으면 다하지(그 궁극에 다다르지) 못함이 있게 된다. 아우르지 못하면 그 참됨(실상)과 크게 달라지고, 다하지 못하면 (말미암은 곳에 다다르지 못한 것은) 이름을 붙일 수 없나니 이는 부연하여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夫“道”也者,取乎萬物之所由也;“玄”也者,取乎幽冥之所出也;“深”也者,[노자21장·왕필본] 道之爲物~窈兮冥兮
[노자21장·백서본] 道之物~幼呵冥呵 / 幽呵鳴呵@백서을본
도라고 하는 것은 은은하고(숨어있고, 어둑하고) 어둡다~
[노자10장·왕필주] 凡言玄德,皆有德而不知其主,出乎幽冥(유명)
[노자51장·왕필주] 有德而不知其主也,出乎幽冥,是以謂之玄德也
[초적주] 노자21장에서 백서본의 유(幼)와 유(幽)가 왕필본에서 요(窈)로 바뀌었다. 백서본의 유(幽)는 도를 표현하고 있어, 유(幽)로 현덕을 표현하고자 할 경우 걸림돌이 된다.取乎探賾而不可究也; “[주역-계사상 周易《繫辭上》]
探賾索隱,鉤深致遠,以定天下之吉凶,成天下之亹亹者,莫大乎蓍龜。깊은 것을 찾고 숨은 것을 샅샅이 뒤져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낚아 올리고 먼 곳에 있는 것을 불러들여, 천하의 길흉을 정하여 천하가 지치지 않고 힘써 나아가도록 해주는 것은 시초와 거북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
https://ctext.org/book-of-changes/xi-ci-shang/zh大”也者,取乎彌綸而不可極也; “遠”也者,取乎綿邈而不可及也; “微”也者,取乎幽微而不可睹也。然則 “道”、“玄”、“深”、“大”、“微”、“遠”之言,各有其義,未盡其極者也。[노자25장] 强爲之名曰大
[하상공주] 不知其名 强曰大者 高而無上 羅而無外 無不包容 故曰大也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억지로 크다고 말한 것은,높아서 그 위가 없고,그물을 치면(망라하여) 그 밖이 없으며 , 감싸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없으므로 '크다'고 말한 것이다.
[노자25장]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하상공주] 道大者 包羅天地 無所不容也 天大者 無所不蓋也 地大者 無所不載也 王大者 無所不制也 도가 크다는 것은 천지를 포괄하고망라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없음이고, 하늘이 크다는 것은 덮지 못하는 곳이 없음이며, 땅이 크다는 것은 싣지 못하는 것이 없음이다. 왕이 크다는 것은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무릇 도(道)라는 것은 만물이 말미암은 곳에서 취했고, 현(玄)이라는 것은 '그윽한 어두움(幽冥)'이 나오는 곳에서 취했고, 심(深)이라는 것은 심오한 것을 탐색하여도 구명하지 못함에서 취했고, 대(大)라는 것은 모두 휩싸서 하나로 묶으려 해도 끝내 할 수 없음에서 취했고, 원(遠)이란 것은 아득히 멀어 다다를 수 없음에서 취했고, 미(微)라는 것은 어스름하고 은미하여 볼 수 없음에서 취했다. 그런즉 도(道), 현(玄), 심(深), 대(大), 미(微), 원(遠)이라는 말은 저마다 그 뜻이 있지만 그 궁극에 이르지는 못하는 것들이다.
然彌綸無極,不可名細;微妙無形,不可名大。是以篇云: "
[노자32장]
도는 항상 이름이 없다. 질박하고 비록 (아주) 작지만~
[죽간본] 道恒亡名,樸,雖細,天地弗敢臣,
[백서본] 道恆無名。樸唯小而天下弗敢臣
[하상공본] 道常無名,樸雖小,天下莫能臣也。
[왕필본] 道常無名。天下莫能臣也。
[초적주] 노자32장에서 하상공본 등은 "도는 항상 이름이 없다[無名]. 그리고 질박하다[樸]. 비록 (아주) 작지만[細, 小]"으로 표기되었으나, 왕필본에서만 질박함[樸]과 작음[小]이란 문구가 함께 삭제되었다. (주석에서 박(樸)은 부활시킴)왕필의 논리에 따르면 도(道)는 크고[大], 큰 것(大)은 아주 작은 존재[細]가 될 수 없겟다. ※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道大@노자25장, 道~可名於小~可名於大@노자34장, 我(道)大@노자67장字之曰道","
[노자25장]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자를 지어 도라고 하고 억지로 이름 붙여 '크다'고 한다謂之曰玄",而不名也。然則[노자1장]
此兩者同出而異名,同謂之玄,玄之又玄,衆妙之門。
▲ 이 둘은 나온 데가 같고 이름이 다르지만 같이 일러 '그윽하고 아득하다[玄])'라고 한다. (양자(兩者)가 유(有)와 무(無)일 경우)
▲ 이 둘은 같이 나왔지만 이름이 다를 뿐 같이 일러 '아득히 가물거린다[玄]'라고 한다. (왕필의 주석에 따라 양자(兩者)가 비롯(始)과 어미(母)일 경우)
※ 참고로, 하상공은 양자(兩者)를 유욕과 무욕으로 보았음言之者失其常,名之者離其眞,[노자1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말해질(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가 늘 그러한 도는 아니요 이름 지어 붙일 수 있는 이름이 늘 그러한 이름은 아니다爲之者則敗其性,執之者則失其原矣。是以聖人 不以言爲主,則不違其常; 不以名爲常,則不離其眞; 不以爲爲事,則不敗其性; 不以執爲製,則不失其原矣。 然則《老子》之文,欲辯而詰者,則失其旨也; 欲名而責者,則違其義也。[노자29장]
天下神器 不可爲也 不可執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천하는 신기한 그릇이라 빚을 수도 없고 움켜잡을 수도 없다. 빚으려고 하면 망가트리고 움켜잡으려고 하면 놓친다
하지만 두루 휩싸서 하나로 묶는 것이 그지없이 큰 것을 세(細)라 이름할 수 없고, 미세하고 정묘하며 형상이 없는 것을 대(大)라고 이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노자 도편에 이르기를 "자를 지어 도라고 한다", "그것을 일러 아득히 가물거린다"라고 (말)했지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런즉 그것을 말하는 자는 그 상(常, 늘 그러함)을 잃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자는 그 참됨(실상)에서 떠나고(멀어지고), 그것을 (일부러) 하는 자는 그 천성(본성)을 망가뜨리고 그것을 틀어잡는 자는 그 원형을 잃는다. 이 때문에 성인은, 말을 주된 것으로 삼지 않는즉 상(常)에 어긋나지 않고, 이름을 상(常)이라 여기지 않은 즉 (무형·무명이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불변하는 常이므로) 그 진실(본질)에서 멀어지지 않으며, 함(일부러 베풂)을 일삼지 않은 즉 (백성의) 천성을 망가뜨리지 않고, 틀어잡아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으므로 그 원형을 잃지 않는다. 그런즉 '노자'의 글을 분변하여 따지려고(힐문하려고) 하는 자는 그 뜻(취지)를 놓칠 것이요, 이름으로 따지려고(책문하려고) 하는 자는 그 뜻(의의)과 어긋날 것이다. - [요지] / ToTop
故其大歸也,論太始之原以明自然之性,
[노자1장]
無名天地之始@왕필본, 無名萬物之始也@백서본
- 왕필본 : 무명은천지의 비롯 이다. 무는 천지의 비롯이라 이름한다.
- 백서본 : 무명은 만물의 비롯이다. 무는 만물의 비롯이라 이름한다.
[노자32장] 道常無名
도는 항상 무명이다. (도에게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
[노자25장] 有物混成 先天地生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섞여 이루어진 무엇인가가 있었다.그것은 하늘·땅보다 먼저 생겼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자를 지어도 라고 하였다~
[노자17장] 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
~도 는절로 그러함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
[노자64장] 是以聖人~以輔 萬物之自然,而不敢爲。
성인은 ~만물의 절로 그러함 을 도우며 결코 억지로 하지 않는다.演幽冥之極以定惑罔之迷。
[노자10장]
[왕필주] 凡言玄德,皆有德而不知其主,出乎幽冥 무릇 현덕이란 다 덕이 있으되 그 주인을 알지 못하여 '그윽하고 어두운 곳[幽冥] '에서 나왔음을 말한 것이다
[초적주] 왕필은 현덕(玄德)의 '드러나지 않는' 속성을 인덕(仁德)에 적용하여 '인을 끊으라는 말'에 대한 미혹을 해소하며 인덕을 회복시킬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仁)을 덕(德)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 (노자38장 하덕의 재정의 참조)因而不爲,[노자10장] 天門開闔,能爲雌乎?
천문을 열고 닫음에 암컷처럼 할 수 있겠는가?
[왕필주] 天門,(謂)天下之所從由(由從)也。開闔,治亂之際也,或開或闔,經通於天下, 故曰,天門開闔也。雌,應而不倡(昌),因而不爲,言天門開閡能爲雌乎,則物自賓而處自安矣。 천문이란 천하가 그로부터 말미암는 곳을 말한다. 개합이란 다스려지는 시기와 어지러운 시기이니, 때로 열리고 때로 닫히면서 천하를 경유하고 통하므로 천문개합이라고 한다. 암컷[雌]은 응하되 (앞서서) 창도하지 않고따르되 거스르지 않으니 , '천문개애능위자호'는 만물이 스스로 손 오듯 찾아와 스스로 안정된 곳에 머문다는 것을 말한다.損而不施,[노자48장]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줄이고 줄여 무위(의 경지)에 이르면 함이 없이도 (무위로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崇本以息末,[노자52장] 旣知其母,復知其子,旣知其子,復守其母,沒其不殆。
[왕필주] 母本也 子末也 得本以知末 不舍本以逐末也어미는 근본이고 아들은 말단이다 . 근본을 얻어서 말단을 안다. 근본을 버리고(버리면서) 말단을 좇아가지 않는다.
[노자38장] [왕필주] 本在無爲 母在無名 棄本捨母而適其子 功雖大焉 必有不濟
근본은 무위(無爲)에 있고 어미는 무명(無名)에 있다.근본과 어미를 버리고 그 아들에게 가면 공이 아무리 커도 반드시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 생긴다.
守母以存其子 崇本以擧其末 則形名俱有而邪不生
어미(無名, 無形)를 지켜 그 아들을 보존하고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일으키면 형상과 이름[형명]이 함께 있어도 사악함이 발생하지 않는다.
大美配天而華不作, 故母不可遠,本不可失。 仁義,母之所生,非可以為母。 形器,匠之所成,非可以為匠也。 捨其母而用其子, 棄其本而適其末, 名則有所分, 形則有所止, 雖極其大,必有不周, 雖盛其美,必有憂患, 功在為之,豈足處也。
크나큰 아름다움은 하늘과 짝할 만하여 겉치레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어미를 멀리해서도 안되고 근본을 잃어서도 안된다. 인의는 어미가 나은 것이지 어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형기(그릇)는 장인이 만든 것이지 장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 어미를 버리고 그 아들을 쓰거나, 그 근본을 버리고 말단으로 가면 이름은 나뉘는 바가 있게 되고 형상은 그치는 바(유한함)가 있게 된다. 아무리 그(형상의) 크기를 극대화해도 반드시 두루 미치지 못함이 있게 되고 아무리 그(이름의) 아름다움을 성대하게 하여도 반드시 우환이 있게 된다. 공이 함(무위하지 못함)에 있으니 어찌 (그런 데에) 머무를 만하겠는가.守母以存子;[노자52장]
[왕필본] 旣知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其不殆
이미 그 어미를 알았으니 다시 돌아가 그 아들을 안다. 이미 그 아들을 알았으니 다시 돌아가 그 어미를 지킨다. 그리하면 죽도록 위태롭지 않으리라
[백서본]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其不殆
이미 그 어미를 얻었으니 (그로써) 그 아들을 안다. 이미 그 아들을 알았으니 다시 돌아가 그 어미를 지킨다. 그리하면~
[초적주] '노자'에 아들을 안다는 표현은 있어도 아들을 보존한다는 표현은 없음賤夫巧術,[노자65장] 以智治國,國之賊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림은 나라의 해악이다.
[왕필주] 民之難治,以其多智也,當務塞兌閉門,令無知無欲,而以智術動民。 邪心旣動,復以巧術防民之爲,民知其術,防隨而避之,思惟密巧,奸爲益滋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 마땅히 (욕망의) 구멍을 막고 (지혜의) 문을 닫아 무지무욕하게 하도록 힘써야 하지만 지혜와 술책으로 백성을 움직이니 삿된 마음이 이미 움직이고 나서 다시교묘한 술책(치술) 으로 백성의 행위를 막으려(금하려) 해도 백성은 그 술책을 알고 따름(추구,추종)을 막아(방비하여) 그것을 피하며 생각이 (오로지) 은밀·교묘해지고 간교한 행위는 더욱 늘어난다(증가한다).爲在未有,[노자64장]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일은) 터지기 전에 미리 (처리)해야 하고 (나라는) 어지러워지기 전에 미리 다스려야 한다無責於人,[노자79장]
是以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
그러므로 성인은 (원망 살 일을 하지 않아) (채권의) 증표를 쥐고 있어도 사람들을 다그치지 않는다必求諸己。此其大要也。[노자46장]
天下有道,卻走馬以糞。 천하에 도가 있으면 달리는 말을 (전장에서) 물러 밭일에 쓴다.
[왕필주] 천하에 도가 있으면, 만족을 알고 그칠 줄 알며밖에서 구하는 것이 없고 각자 그 안을 닦을 뿐 이다. 그러므로 달리는 말을 물러 밭에 씨뿌리고 거름주는 일에 쓴다.
[노자54장]
吾何以知天下然哉?以此。 우리가 무엇으로 천하를 아는가.
[왕필주] 우리가 천하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는자기를 살펴서 알지[察己以知之], 밖에서 구하지 않으니 [不求於外] 이른 바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안다는 것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요점은, 태초의 시원을 논하여 절로 그러함의 본성(천성)을 밝히고, 그윽한 어두움[幽冥]의 궁극을 밝혀내어(연역·추단하여) 미혹과 기망의 헷갈림을 바로잡는 것이다. 따르되 거스르지(작위하지) 않고 줄일 뿐 베풀지 않으며,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살리며, 어미를 수호하여 자식을 보존하고, 저 교묘한 술책(치술)을 낮게 여기고 (일은) 벌어지기 전에 하며, 사람들을(남을) 채근하지 않고 그것을 반드시 자신에게서 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략적인 요지이다. - [제자백가와 노자] / ToTop
而 法者尙乎齊同,而刑以檢之。 名者尙乎定眞,而言以正之。 儒者尙乎全愛,而譽以進之。 墨者尙乎儉嗇,而矯以立之。 雜者尙乎眾美,而總以行之。
한편, 법가(法家)는 동등함을 숭상하여 형벌로써 (모든 것을) 검속·단속·금제하고, 명가(名家)는 참됨(실상)을 규정·판정하는 것을 숭상하여 언변으로 (모든 것을) 바로잡으며, 유가(儒家)는 온전한 사랑을 숭상하여 명예로써 (모든 것을) 진전시키고, 묵가(墨家)는 검약을 숭상하여 교정함으로써 (모든 것을) 바로 세우며, 잡가(雜家)는 여러 아름다운(좋은) 것을 숭상하여 한데 묶어 (모든 것을 운)행한다.
夫 刑以檢物,巧僞必生; 名以定物,理恕必失; 譽以進物,爭尙必起; 矯以立物,乖違必作; 雜以行物,穢亂必興。 斯皆用其子而棄其母。物失所載,未足守也。[노자38장]
[왕필주] 夫載之以大道,鎮之以無名,則物無所尚,志無所營 ~棄其所載,舍其所生,用其成形,役其聰明, 무릇(만물을) 대도(大道)로써 싣고 무명(無名)으로 진정시킨다면 만물은 숭상할 바(대상)가 없게 되고 뜻은 경영(추구)하는 바가 없게 되며 ~그실은 것(대도) 을 버리고 생겨난 데(어미)를 버리며 형상을 이룬 것을 쓰고 총명을 부린다면~
무릇 형벌로써 만물을 검속·단속하면 교묘한 거짓이 반드시 생겨나고, 이름으로 만물을 규정·확정하면 이성적 용서(관용, 똘레랑스)를 반드시 잃으며, 명예로써 만물을 진전·향상시키(려고 하)면 숭상을 다투는 일이 반드시 일어나고, 교정으로 만물을 바로 세우(려고 하)면 빗나가거나 어기는 일이 반드시 일어나며, 잡된 것으로 만물을 운행하면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일이 반드시 발흥한다. 이는 모두 그 아들을 쓰고 그 어미를 버린 것으로, 만물이 타고 갈 것(만물을 실어나르는 것)을 잃으니 지킬만 한 것이 못된다.
然致同途異,至合趣乖, 而學者惑其所致,迷其所趣。 觀其齊同,則謂之法; 睹其定眞,則謂之名; 察其純愛,則謂之儒; 鑑其儉嗇,則謂之墨; 見其不係,則謂之雜。 隨其所鑑而正名焉,順其所好而執意焉。 故使有紛紜憒錯之論,殊趣辨析之爭,蓋由斯矣。
그러나 이르는 곳은 같아도 길이 다르고, 합치에 이르러도 괴리(동떨어지고 어그러짐)로 나아가니, 배우는 자는 이른(도달한) 곳에 미혹되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바(경로, 방법)에 헷갈린다. 동등한지 관찰하면 법가라고 하고, 참됨을 규정·판정하는지를 보면 명가라고 하며, 순수한 사랑인지 살피면 유가라고 하고, 검약을 살펴보면 묵가라고 하며, 매여 있지 않음을 보면 잡가라고 한다. 보는 바(관점)에 따라 이름을 바로잡고, 좋아하는 바에 따라 의견을 굳게 가지므로 어지럽고 어수선하게 뒤섞인 논의가 일어나도록 만들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분별 분석하는 논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은, 대개 이들로 말미암은 것이다.
又其爲文也,舉終以證始,[노자1장] [왕필주]
무명(無名)인 때가 곧 만물의 비롯[始]이다. ~유명(有名)인 때는 곧 만물의 어미[母]가 된다. 도는 무형무명(無形無名)으로 만물을 낳고 이루며, 만물은 그로써 비롯되고 그로써 이루지만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현묘함[玄]이 더욱 현묘하다고 말한 것이다. ~만물은 무(無)와 미(微)에서 비롯된 뒤에 생겨나고 성장한다. 그러므로 항상 무욕·공허하면 그것이만물을 일으키는[始](시작하는, 잉태한는, 싹틔우는) 묘함 을 볼 수 있다. ~유가 이로운 것은 반드시 무를 쓰임으로 삼아서다. 욕심이 뻗어나오는 곳은 도에 들어맞은 뒤에 멈추나니(구제되나니) 항상 욕심이 있으면 그것이만물을 끝내는[終] '끝으로 돌아감' 을 볼 수 있다.本始以盡終。開而弗達,導而弗牽。 尋而後旣其義,推而後儘其理。 善發事始以首其論,明夫會歸以終其文。[노자14장] [왕필본]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옛날의 도를 잡아 오늘날 있는 것을 제어하며 능히 옛날의 비롯됨을 아니 이를 도의 벼리라고 한다.
[노자52장] [왕필본]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知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천하에 비롯이 있으니 천하의 어미라 한다. 이미 그 어미를 알았으니 다시 그 아들을 알고 이미 아들을 알았으니 다시 그 어미를 지킨다.
한편 그(노자)가 쓴 글(의 구성)은, 끝을 근거로 처음을 증명하고 처음을 근본으로 하여 끝맺음을 다한다(완수한다). (길을) 열되 도달시키지 않고 길잡이 노릇은 하되 억지로 이끌지 않으며, 탐구한 뒤에 그 뜻을 다하고(그 뜻의 극한에 다다르고) 추론한 뒤에 그 이치를 다하며(따져 깊이 생각하며), 사물의 시원을 잘 추적하여 그 논의를 시작하고 그 귀결을 밝혀 글을 마친다.
故使同趣而感發者,莫不美其興言之始,因而演焉;異旨而獨構者,莫不說其會歸之徵,以爲證焉。 夫途雖殊,必同其歸;慮雖百,必均其致。而擧夫歸致以明至理,故使觸類而思者,莫不欣其思之所應,以爲得其義焉。[노자47장] 不出戶,知天下;不窺牖,見天道。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밖을 보지 않아도 천도를 본다
[왕필주] 事有宗,而物有主,途雖殊而同歸也,慮雖百而其致一也。 道有大常,理有大致 ,執古之道,可以御今,雖處於今,可以知古始,故不出戶,窺牖而可知也。
일에는 종지가 있고 만물에는 주인이 있다.길이 설령 다르더라도 돌아가는 곳은 같고 궁리(모색)가 설령 백가지이더라도 이르는 곳은 하나이다 . 도에는 큰 상(常, 늘 그러함)이 있고 이치에는 큰 다다름이 있다. 옛날의 도를 잡아 오늘을 제어할 수 있고, 비록 오늘에 처해 있어도 옛날의 비롯을 알 수 있으니, 문밖을 나가지 않고 창밖을 엿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취향(나아가는 방향)이 같아서 감응(공감)하는 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시작점으로부터 그것이 연역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즐거워하게 되고, 취지(뜻하는 바)가 달라서 홀로 구상하는 자들은 결론을 모아보면 그것이 입증(귀납)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뻐하게 된다. 저 길이 비록 다르더라도 반드시 돌아가는 곳을 동일하게 하고, 궁리(모색)가 비록 백가지이더라도 반드시 다다른 곳을 균일하게 하여, 귀착점이 일치됨을 근거로 지극한 이치를 밝힌다. 그러므로 유사한 그룹과 접촉하여 사유하는 자들은 (그들의) 사유(유추)가 호응을 받아 의(義)를 얻게 됨을 반드시 기뻐하게 된다. - [형명(形名)] + 명칭(名稱)2 / ToTop
凡物之所以存,乃反其形;功之所以克,乃反其名。 夫存者不以存爲存,以其不忘亡也; 安者不以安爲安,以其不忘危也。 故保其存者亡,不忘亡者存, 安其位者危,不忘危者安。[孫子兵法《軍形》] 손자병법
古之善戰者,勝于易勝者; 故善戰者之勝也,無智名,無勇功。
옛날에 잘 싸우는 사람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미리 파악하여) 이기기 쉬운 싸움(터)에서 이겼다. 그러므로 잘 싸우는 자의 승리에는 지혜로운이름 도 용맹스러운공 (에 대한 칭송)도 없(었)다.
https://ctext.org/art-of-war/tactical-dispositions/zh善力舉秋毫,善聽聞雷霆,[孫子兵法《軍形》] 손자병법 善守者,藏于九地之下; 善攻者,動于九天之上, 故能自保而全勝也。 見勝,不過眾人之所知,非善之善者也。 戰勝,而天下曰善,非善之善者也。 故 舉秋毫,不爲多力; 見日月,不爲明目; 聞雷霆,不爲聰耳。
잘 방어하는 자는 아주 깊은 곳에 감추고, 잘 공격하는 자는 아주 높은 곳에서 움직인다. 그러므로 (방어하는 자는) 자신을 보전하고 (공격하는 자는) 모든 싸움에서 이긴다. 승리를 미리 내다보는 것이 뭇사람이 아는 바(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아주 훌륭한 식견이 아니고, 싸워 이겨 천하가 잘했다고 말(칭찬)한다면 그것은 아주 잘한 승리가 아니다.가을 털 을 들었다고 해서 그를 힘 센 자라고 말하지 않고, 해와 달을 보았다고 해서 눈 밝은 자라 하지 않으며,우레 소리 를 들었다고 해서 귀 밝은 자라고 하지 않듯이~
https://ctext.org/art-of-war/tactical-dispositions/zh此道之與形反也。[노자38장] [왕필주]
本在無爲 母在無名 棄本捨母而適其子 功雖大焉 必有不濟
근본은 무위(無爲)에 있고 어미는 무명(無名)에 있다. 근본과 어미를 버리고 그 아들에게 가면 공이 아무리 커도 반드시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 생긴다.
守母以存其子 崇本以擧其末 則形名俱有而邪不生
어미(無爲, 無名, 無形)를 지켜 그 아들을 보존하고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일으키면형상과 이름[形名] 이 함께 있어도 사악함(부정당함)이 발생하지 않는다.(+)[노자38장] [왕필주]
大美配天而華不作, 故母不可遠,本不可失。 仁義,母之所生,非可以為母。 形器,匠之所成,非可以為匠也。 捨其母而用其子, 棄其本而適其末, 名則有所分, 形則有所止, 雖極其大,必有不周, 雖盛其美,必有憂患, 功在為之,豈足處也。
크나큰 아름다움은 하늘과 짝할 만하여 겉치레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미를 멀리해서도 안되고 근본을 잃어서도 안된다. 인의는 어미가 나은 것이지 어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형기(그릇)는 장인이 만든 것이지 장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어미를 버리고 그 아들을 쓰거나, 그 근본을 버리고 말단으로 가면이름은 나뉘는 바가 있게 되고 형상은 그치는 바(유한함)가 있게 된다. 아무리 그(형상의) 크기를 극대화해도 반드시 두루 미치지 못함이 있게 되고 아무리 그(이름의) 아름다움을 성대하게 하여도 반드시 우환이 있게 된다. 공이 함(무위하지 못함)에 있으니 어찌 (그런 데에) 머무를 만하겠는가.
무릇 만물이 생존하는(존립할 수 있는) 까닭(원인)은 그 형상(드러나 보이는 모습)과 반대라는 것이고, 전공을 세우는(공이 새겨질 수 있는) 까닭(원인)은 바로 그 이름(드날림)과 반대라는 것이다. 무릇 생존하(려고 하)는 자는 (그저) 삶을 삶으로(만) 여기지(생각하지) 않고 (반대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죽음을 잊지 않기 때문이요, 편안한 자는 (그저) 편안함을 편안함으로(만) 여기지(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드러나 보이지 않는) 위태로움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을 보존하(려고만 하)는 자는 죽고, 죽음을 잊지 않는 자는 (도리어) 살(게 되)며, 자리를 편안히 여기(기만 하)는 자는 위태롭고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 자는 (도리어) 편안하(게 된)다. 힘 센 자(라는 명성을 얻은 자)가 가을 털을 들어올리(고서 칭송을 바라)고, 귀 밝은 자(라는 명성이 있는 자)가 천둥소리를 듣는(듣고서 칭송받기를 바란)다면, 이는 (무형(無形)·무명(無名)의) 도와 형상(드러남)이 상반되는 것이다.
安者實安,而曰非安之所安; 存者實存,而曰非存之所存;侯王實尊,而曰非尊之所爲; 天地實大,而曰非大之所能; 聖功實存,而曰絶聖之所立; 仁德實著,而曰棄仁之所存。 故使
[노자39장] (백서본)
侯王得一以爲天下正 ~其致之也 ~謂侯王毋已貴以高將恐蹶 故必貴而以賤爲本 必高矣而以下爲基 옛날에 ~후왕은하나를 얻어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 ~그는 그러한 경지에 이르러 (그 위치에 올라) ~후왕(자신)이 끝없이 귀하고 높으면 장차 거꾸러질까 두렵다(염려한다)고 말했다 . 그러므로 반드시, 귀하지만 천한 것을 근본으로 여겼고 높지만 낮은 것을 기본으로 여겼다.見形而不及道者,莫不忿其言焉。[노자39장] (왕필주)
物皆各得此一以成 旣成而舍以居成 居成則失其母~皆有其母以存其形~貴在其母而母無貴形
만물은 저마다 이 하나를 얻어 이루어지고, 이미 이루어지고 나서는 (이 하나를) 버리고 이루어진 데에 머문다.이루어진 데에 머물면 그 어미를 잃은 것이다. ~ 모든 것은 그 어미가 있어서 그 형상을 보존한다 . ~귀함은 그 어미에게 있지 어미가 형상을 귀하게 여기는 일은 없다.
편안한 자가 실로 편안하더라도 편안함이 편안(하게 )한 바가 아니라고 말하고, 생존하는 자가 실로 생존하더라도 생존이 생존(하게 )한 바가 아니라고 말하며, 후왕이 실로 존귀하더라도 존귀함이 존귀(하게 )한 바가 아니라고 말하고, 하늘과 땅이 실로 광대하여도 광대함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말)한다. 성(聖)의 공(功)이 실로 존재하더라도 성(聖)이 세운 바를 끊어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하고, 인덕이 실로 저명하더라도 인(仁)이 존재하는 바(사랑을 베푼다는 것)를 버려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형상(드러난 것)만 보고 (숨어 있는) 도에 이르지 못하는 자는, (예를 들면 그 좋은 인의를 끊으라는) 노자의 말에 반드시 화를 내고 만다.
夫欲定物之本者,則雖近而必自遠以證其始。夫欲明物之所由者,則雖顯而必自幽以敘其本。 故取天地之外,以明形骸之內;明侯王孤寡之義,而從道一以宣其始。 故使察近而不及流統之原者,莫不誕其言以爲虛焉。[노자39장] (백서본)
昔之得一者 ~侯王得一以爲天下正 其致之也 ~謂侯王毋已貴以高將恐蹶 故必貴而以賤爲本, 必高矣而以下爲基。 ~夫是以侯王自胃孤、寡、不穀。此其賤之本與?非也。
옛날에 하나를 얻은 것들이 있었다. ~후왕은 하나를 얻어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그러한 위치에 올라 ~내가 끝없이 고귀하면 장차 거꾸러질까 두렵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반드시, 귀했지만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았고, 높았지만 낮은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대저 이 때문에 후왕은고·과 ·불곡이라 자칭했으니 이는 그가 천한 것(백성)을 근본으로 삼았음이 아니겠는가?
[초적주]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았지만 ~만물 가운데 하나를 얻은 특별한 존재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분화된 만물·만인의 근원·근본은 하나라는 것을 터득한) 하늘·땅·신령·골짜기·(천하의 우두머리가 된) 후왕이었다.
무릇 만물의 뿌리(본성, 본원)를 규정(판정)하고자 하면 설령 가까이 있는 (눈에 띄는) 것이더라도 반드시 먼 데서부터 그 비롯됨(시작)을 증명해야 하고, 무릇 만물이 말미암은 곳을 밝히고자 하면 설령 밝게 드러나 있더라도 반드시 어슴푸레 숨어 있는 것으로부터 그 뿌리(본원)를 서술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외면(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가지고 육체의 내면(정신세계)을 밝히고, 임금(후왕)이 고·과라 자칭하는 뜻을 밝혀서 도(道)는 하나임을 좇아 그 시원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까운 데를 살필 뿐 흐름이 비롯되는 근원에 미치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말을 (허황한 말로) 속이므로 (그의 말은) 반드시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是以云云者, 各申其說,人美其亂。 或迂其言,或譏其論, 若曉而昧,若分而亂, 斯之由矣。
이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는 저마다 자신의 논설을 펼치고 사람들은 그 어지러운 것(견해)을 찬미한다. 어떤 이는 말을 이리저리 돌리고 (진부한 말을 늘어놓고) 어떤 이는 그 논설(견해)을 비난·조롱하며, 훤히 깨달은 듯 하지만 (멋대로 추측하여) 어둡고(애매모호하고), 분별 있는 듯하지만 어지러운 것은, 모두 이(잎가지만 보고 뿌리는 찾아보지 않음)로 말미암는다.
名也者,定彼者也; 稱也者,從謂者也。 名生乎彼,稱出乎我。 故 涉之乎無物而不由,則稱之曰道; 求之乎無妙而不出,則謂之曰玄。 妙出乎玄,眾由乎道。 故「生之畜之」,不壅不塞,通物之性,道之謂也。 「生而不有,爲而不恃,長而不宰」,有德而無主,
[노자10장]
生之、畜之,生而不有,爲而不恃,長而不宰,是謂玄德。
낳고 기르며 낳고서도 제것으로 삼지 않고 베풀고도 기대지 않으며 자라게 하고도 채잡지 않으니 이를 현덕이라고 한다.
[왕필주] (生之) 不塞其原也。 (畜之) 不禁其性也。 不塞其原,則物自生,何功之有。不禁其性,則物自濟,何為之恃。物自長足,不吾宰成,有德無生,非玄如何。凡言玄德,皆有德而不知其主,出乎幽冥。 (풀이 생략)
[초적주] 도는 생지(生之)하고, 덕은 축(휵)지(畜之)하며, 현덕은 생이불유(生而不有~)하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왕필은 노자지략에서 도[生之]와 덕[畜之]을 함께 묶어 도를 이른 말이라 하고, 그것을 현덕[玄之德]과 대비시키고 있다.玄之德也。 「玄」,謂之深者也;「[노자51장]
故道生之 德畜之~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도는 낳고 덕은 기른다 ~낳고서도 제것으로 삼지 않고 베풀고도 기대지 않으며 자라게 하고도 채잡지 않으니 이를 현덕이라고 한다.
[왕필주] 爲而不有 有德而不知其主也 出乎幽冥 是以謂之玄德也
하고서도(베풀고도) 제것으로 하지 않으니,덕이 있지만 그 주인을 알지 못하며 그윽하고 어두운 곳에서 나왔으니 이 때문에 그것을 일러 현덕이라고 한다.道」,稱之大者也。[노자25장]
有物混成 先天地生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為之名曰大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자를 지어 도라고 하고(했고)
[왕필주] 夫名以定形,字以稱可,言道取於無物而不由也。是混成之中,可言之稱最大也。 무릇 이름 짓는 것[名]은 형상을 정(규정, 판정)함으로써 하고, 자를 짓는 것[字]은 일컬음[稱]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한다. 도는 무물이불유(無物而不由, 어떤 것이면서 그것이 말미암지 않음이 없는 것)에서 취한 것(내가 탐색해 들어가는 것)인 바 이는 섞여 이루어진 것(이름을 알 수 없는 것) 중에서,말로 표현 가능한 일컬음[일컬음이 가능하게 된 것 곧 字를 말함]이 가장 크다 는 것임을 말한다.名號生乎形狀, 稱謂出乎涉求。 名號不虛生, 稱謂不虛出。 故 名號則大失其旨, 稱謂則未盡其極。 是以 謂玄則「玄之又玄」,
[노자25장]
有物混成 先天地生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為之名曰大
섞여 이루어진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천지보다 먼저 생겼다. ~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자를 지어 도라고 하고 억지로 이름 지어 크다고 하였다.
[왕필주] 名以定形,混成無形,不可得而定,故曰,不知其名也。 무릇 이름 짓는 것은 형상을 규정함으로써 하는데, 섞여 이루어져 형상이 없으니 규정이 불가하여(규정되지 않으므로)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稱道則「域中有四大」也。[노자25장]
域中有四大 역 중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다.
[하상공주] ~無稱不可而得為名曰域也。 天地王皆在乎無稱之內也~ ※ 이 글귀 전후 부분은 왕필본과 일치
[왕필주] 四大,道、天、地、王也。 凡物有稱有名則非其極也, 言道則有所由,有所由然後謂之為道,然則是道,稱中之大也,不若無稱之大也。 無稱不可得而名曰域也,道天地王皆在乎無稱之內,故曰,域中有四大者也。
네 가지 큰 것은 도, 하늘, 땅, 왕이다. 무릇 사물에 호칭[稱, 일컬음]이 있고 이름[名]이 있으면 그 극한(에 다다름)은 아니다. 도라고 말하면 말미암은 바(비롯된 곳)가 있게 되는 것이고, 말미암은 바가 있은 연후에 그것을 일러 도라고 하였는 즉, 그렇다면 이 도는 호칭[稱] 중에 큰 것일뿐, 호칭 없는 것의 큰 것만 못하다. 호칭[稱]이 없어 (無稱의 세계에서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지라 역(域)이라고 하였다. 도·하늘·땅·왕은 무칭(無稱]의 안에 있으므로 역중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이름[名]이란 저것을 규정하는 것이요 일컬음[稱]이란 일러 말함[謂]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름[名]은 저쪽(대상)에서 생겨나고 호칭[稱]은 내게서 나간다. 그러므로 무물이불유(無物而不由, 어떤 것이면서 그것이 말미암지 않음이 없는 것)로부터 훑어가면(섭렵해 가면), 그것(궁극)을 일컬어 도(道)라고(들) 말하고, 무묘이불출(無妙而不出, 묘한 것이면서 그것이 나오지 않음이 없는 것)으로부터 탐구해 들어가면, 그것(궁극)을 일러 현(玄)이라고(들) 말한다. 묘함은 현(玄)에서 나오고 만물(온갖 것)은 도(道)로부터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낳고 기르며' 가로막지도 채워 막지도 않고 만물의 본성(천성)을 통하게 한다는 것은 도(道)를 이르는 말이다. '낳되 제것으로 하지 않고 하되 기대지 않으며 자라게 하되 간섭하지 않음'은 덕이 있어도 주인(노릇함)이 없는 것이니 현(玄)의 덕이다. 현(玄)은 일러 말함[謂]이 심오한[深] 것이고, 도(道)는 일컬음[稱]이 큰[大] 것(호칭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이름[名]과 호(號)는 (저쪽의) 형상에서 생겨나고 일컬음[稱]과 일러 말함[謂]은 (나의) 탐색에서 나온다. 이름[名]과 호(號)는 헛되이(공허하게) 생겨나지 않고, 일컬음[稱]과 일러 말함[謂]도 헛되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예로부터) 이름[名]과 호(號)는 (저쪽 대상으로부터 나오는) 그 뜻을 크게 잃고, 일컬음[稱]과 일러 말함[謂]은 (내가 찾아 들어가는) 그 극한에 다다르지 못한다. 이 때문에 현(玄)을 일러 말하여 '현하고도 현하다'라고 했고, 도를 일컬어 '이 세상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 [숭본식말(崇本息末) 사례] : 성지(聖智) 인의(仁義) 교리(巧利) / ToTop
老子之書,其幾乎可一言而蔽之。 噫!崇本息末而已矣。 觀其所由,尋其所歸,言不遠宗,事不失主。 文雖五千,貫之者一;義雖廣瞻,眾則同類。 解其一言以蔽之,則無幽而不識;每事各爲意,則雖辯而愈惑。[노자70장]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내 말은 아주 알기 쉽고 매우 행하기 쉽지만 천하에 알아들을 수 있는 이도 없고 실행할 수 있는 이도 없다)(내) 말에는 종지(만물의 종조, 근본)가 있고 (내가 말하는) 일에는 임금(만물의 주인)이 있다 .
[왕필주] 宗,萬物之宗也。 君,萬物之主也。
노자의 글은 아마도 (다음) 한 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그것은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살리는 것[崇本息末]일 뿐이다. 말미암은 곳을 보고 돌아갈 곳을 찾으니 (노자의) 말은 종지에서 멀지 않고 (노자가 말하는) 일은 종주를 잃지 않는다. 글이 비록 오천이나 그것을 관통하는 것은 하나이며, 뜻은 비록 널리 보지만 많은 글이 같은 부류이다. 그 한 마디 말(앞서 말한 숭본식말)을 이해하(여 그로부터 풀어나가)면 (노자의 글 뜻이) 감춰져 있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하지만) 낱낱이 따로따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아무리 논변하여도 더욱 헷갈리어 헤매게 될 것이다.
嘗試論之曰:夫邪之興也,豈邪者之所爲乎?淫之所起也,豈淫者之所造乎? 故閑邪在乎存誠,不在善察;息淫在乎去華,不在滋章;絶盜在乎去欲,不在嚴刑;止訟存乎不尙,不在善聽。 故不攻其爲也,使其無心於爲也;不害其欲也,使其無心於欲也。謀之於未兆,爲之於未始,如斯而已矣。[노자64장]
其未兆易謀~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아직 조짐이 없을 때 도모하기 쉽다 ~ (일은) 터지기 전에 미리 해야 하고 (나라는) 어지러워지기 전에 미리 다스려야 한다[주1][노자19장]
絶聖棄智,民利百倍;絶仁棄義,民復孝慈;絶巧棄利,盜賊無有。此三者以爲文不足。故令有所屬:見素抱樸,少私寡欲。
성지(聖智)를 버리면 백성의 이득은 백배가 되고, 인의(仁義)를 끊으면 백성은 효성과 자애를 회복하고, 교리(巧利)를 끊으면 도적이 사라진다. 이 세가지는 글이 부족하다고 여겨 속(屬)할 바가 있게 하니, 소박함을 보이고, 질박함을 품으며 사사로움을 줄이고 욕심을 적게하라는 것이다.[주2][노자19장] [왕필주]
聖智,才之善也。仁義,人之善也。巧利,用之善也。而直云絕,文甚不足,不令之有所屬,無以見其指,故曰,此三者以為文而未足,故令人有所屬,屬之於素樸寡欲。
성지(聖智)는 재능이 좋은(많은) 것이고 인의(仁義)는 사람이 좋은 것이며 교리(巧利)는 쓰임(효용)이 좋은 것임에도 곧바로 끊으라고 말하는 것은 글이 심히 부족하여 그것에 속할 바가 있게 하지 않으면 그것(위 세 문장)이 가리키는 바를 볼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 세가지는 글이면서도 충분치 않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속할 바가 있게 하니, 소박과욕(素樸寡欲)에 속하게 한 것이다.[주3][노자19장] 絶聖棄智,民利百倍;絶仁棄義,民復孝慈;絶巧棄利,盜賊無有。此三者以爲文不足。故令有所屬:見素抱樸,少私寡欲。
●노자 : 현소포박·소사과욕을 뭉뚱그려 성지·인의·교리를 끊은 후의 대안으로 제시
[ 절성기지(絶聖棄智) -> 民利百倍 ] ┐
[ 절인기의(絶仁棄義) -> 民復孝慈 ] ┼ <─현소포박(見素抱樸),소사과욕(少私寡欲)
[ 절교기리(絶巧棄利) -> 盜賊無有 ] ┘
● 노자지략 : 현소(見素)는 성지(聖智)에, 포박(抱樸)은 인의(仁義)에 분리 대응
[ 절성기지(絶聖棄智) -> 見素見素 ] -> 靜民欲 民利百倍 聖智->治巧僞
[ 절인기의(絶仁棄義) -> 抱樸抱樸 ] -> 全篤實 民復孝慈 仁義->敦薄俗
[ 절교기리(絶巧棄利) -> 少私寡欲 ] -> 息華競 盜賊無有 巧利->興事用
예전에 "대저 사악함이 발흥하는 것이 어찌 사악한 자의 소행이며 음란함이 발기하는 것이 어찌 음란한 자가 조성하는 것이겠는가"라는 시론(試論)이 있었다. 예로부터(원래) 사악함을 막는 것은 참된 마음을 보존함에 있지 자세히 조사(수사)함에 있지 아니하고, 음란함(탐욕)을 그치게 하는 것은 화려함(영화)을 버림에 있지 조문(법령)을 늘림에 있지 아니하며, 도둑을 끊는(근절시키는) 것은 욕심을 버림에 있지 형벌(처벌)을 엄하게 함에 있지 아니하고, 송사를 그치게 하는 것은 (재물 또는 재능이 많은 자를) 높이지 않음에 있지 청단(판결)을 잘함에 있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위(의 결과)를 공격·공략하지 말고 그들이(그들에게) 행위로 이끄는 (사악한 행위에 이르는) 마음(원인)이 없(어지)도록 하며, 그들의 욕망(의 결과)에 대하여 해를 입히지 말고 욕망으로 이끄는(탐욕에 이르는) 마음(원인)이 없(어지)도록 할 것이다. 아직 조짐이 없을 때 그것을 꾀하고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때 그것을 한다는 것(노자의 말)은 이와 같을 따름이다.
故 竭聖智以治巧僞,未若見質素以靜民欲; 興仁義以敦薄俗,未若抱樸以全篤實; 多巧利以興事用,未若寡私欲以息華競。
그러므로 성지(聖智)를 다하여 교묘한 거짓을 다스리는 것은 질박·소박함을 보여 백성의 욕망을 가라앉히는 것만 못하고, 인의(仁義)를 흥하게 하여(사랑과 정의를 내세워) 얄팍(천박)한 풍속을 도탑게(사랑이나 인정이 많게) 하는 것은 소박함을 품어 진실·성실함을 온전히 깃들게 하는 것만 못하며, 교리(巧利)를 많게 하여 일의 효용을 흥하게 하는(높이는) 것은 사사로운 욕망을 적게하여 화려함 경쟁(앞다퉈 겉치레를 높이는 풍조)을 멈추게 하는 것만 못하다.
故 絶司祭(察),潛聰明, 去勸進,翦華譽, 棄巧用,賤寶貨。 唯在使民愛欲不生,不在攻其爲邪也。 故 見素樸以絶聖智, 寡私欲以棄巧利, 皆崇本以息末之謂也。[노자57장] [왕필주] 도로써 나라를 다스림은 근본을 숭상하여 말단을 살리는 것[崇本以息末]이요, 바로잡음으로 나라를 다스림은 법을 세워(새로 만들어 제정하여) 말단을 치는 것[立辟以攻末]이니, 근본이 서지 않은 채 말단이 천박하면[本不立而末淺] 백성의 역량을 초과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책으로 군사를 부리기에 이른다.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다스리면[舍本以治末], ~이들 네 가지(我
無爲 而民自化,我好靜 而民自正,我無事 而民自富,我無欲 而民自樸)는 근본을 숭상하여 말단을 살리는 것[崇本以息末]이다.
[노자38장] [왕필주] 어미를 지키고 아들을 보존하고[守母以存其子]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일으킨다[崇本以擧其末]. ~어미를 버리고 그 아들을 쓰고[捨其母而用其子]. 근본을 버리고 말단으로 간다[棄其本而適其末]..(+)[노자52장] [왕필주] 근본을 얻어서 말단을 알며[得本以知末], 근본을 버리고서 말들은 좇지 않는다[不舍本以逐末也].
[노자58장] [왕필주] 광이불요(光而不燿)는 빛으로써 그 미혹된 까닭을 비춰보되 숨은 것까지 찾아내지는 않으니 이른 바 명도약매(明道若昧)라는 것이다. 이는 모두 근본을 숭상하여 말단을 살리는 것[崇本以息末]이고 치지 않으면서 회복시키는 것이다[不攻而使復之].
[노자20장] [왕필주] 다른 사람들은 백성을 살리는 근본을 버리고[人者皆棄生民之本] 말단 장식의 꽃을 귀하게 여긴다.
[노자54장] [왕필주] 선건자불발(善建者不拔)은 뿌리를 공고히 한 뒤에 그 말단을 경영하므로[固其根而後營其末] 뽑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자64장] [왕필주] 근본을 지나 말단이 되고 열매(실질)를 떠나 꽃(겉치레)이된다[過本爲末 過實爲華].
그러므로 단속·감찰을 끊고 총명을 감추어 두고(쓰지 않고), 권장·촉진을 없애고 화려한 명예(헛된 명성)를 자르며, 기교·효용을 버리고 보배로운 물건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오직 백성으로 하여금 애욕이 생겨나지 않도록 함에 있지, 그 사악한 행위를 공격·공략함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박·질박함을 보이고 성지(聖智)를 끊고, 사사로움과 욕심을 적게하고, 교리(巧利)를 버리는 것은, 모두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살리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 [성지(聖智)] / ToTop
夫素樸之道不著,而好欲之美不隱,雖極聖明以察之,竭[노자지략]
雖極聖明以察之~巧愈思精~夫察見至微者,明之極也;
성명(聖明)을 다하여 살펴도~교묘함(교묘한 자)은 더욱 정밀함을 생각한다. ~무릇 지극히 작은 것을 살펴 보는 것은 밝음[明]의 극치다.
雖竭智慮以攻之~僞愈多變~夫探射隱伏者,慮之極也。
지려(智慮)를 다하여 공략하여도~거짓(속이는 자)은 더 많이 변화한다. ~무릇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고 엎드려 있는 것에 (화살을) 쏘는 것은 술책(慮, 꾀)의 극치다.
夫能爲至察探幽之術者,匪唯聖智哉?
무릇 살핌을 지극히 하고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는 치술을 펼 수 있는 것은 오직 성지(聖智)가 아니겠는가?智慮以攻之,巧愈思精,僞愈多變,攻之彌甚,避之彌勤。 則乃智愚相欺,六親相疑,樸散真離,事有其奸。[노자65장] 以智治國, 國之賊 지(智)로써 나라를 다스림은 나라의 적(賊)이다
[왕필주] 지(智, 지혜, 지략)는 다스림[治]과 같다. 지(智)로써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적(賊)이라 말한 것이고, 지(智)라 한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백성이 지(智)가 많기 때문이다. 마땅히 (욕망의) 구멍을 막고 (지혜의) 문을 닫아 무지무욕하도록 힘써야 하지만 지(智)와 술책으로 백성을 움직이니 삿된 마음이 이미 움직이고나서 다시 교묘한 술책으로 백성의 행위를 막으려 해도 백성은 그 치술을 알고 따름을 방비하여 피하니 생각이 오로지 은밀하고 교묘해지고 간교한 행위는 더욱 증가하므로, 지(智)로써 나라를 다스림은 나라의 적(賊)이라고 한 것이다.
무릇 소박·질박한 도가 드러나지 않고 좋아하고 욕심나는 아름다움이 감춰지지 않는다면, 비록 성명(聖明)을 다하여 살피고 지려(智慮)를 다하여 공격(공략)하여도, 교묘함은 더욱 정밀함을 생각하고 거짓은 더욱 변화가 많아지고, 공격·공략이 심해질 수록 피하는 것도 더욱 부지런해지니,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가 서로 속이고, 육친이 서로 의심하며, (통나무가 쪼개져 본성·본질과 멀어지듯) 질박함이 흩어져 참됨은 떠나고, 일에는 간사함이 생긴다.
蓋舍本而攻末,雖極聖智,愈致斯災,況術之下此者乎! 夫鎭之以素樸,則無爲而自正;攻之以聖智,則民窮而巧殷。故[노자37장]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鎭之以)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만물이 변화하면서 욕심이 일어나면 나는 장차
무명의 질박함(통나무)으로 그들을 진정시킬 것 이다. 그리하면 만물 또한 욕심이 없어질 것이고, 욕심부리지 않고 고요해지면 천하는 절로 안정될 것이다.素樸可抱,而聖智可棄。[노자19장]
見素抱樸 少私寡欲
소박함을 보(이)고 질박함을 안는다(품도록 한다). 사사로움을 줄이고 바람(욕심)을 작게 한다(하도록 한다).
대개 근본을 버리고 말단를 공략하면 비록 성지(聖智)를 다할지라도 더욱 (앞에서 언급한) 재앙에 이르는데, 하물며 술책(치술)이 이보다 아래인 자는 어떠하겠는가. 대저 소박·질박함으로 그들을 진정시킨다면 함(다스림)이 없이도 스스로 바르게 될 것이요, 성지(聖智)로 공격·공략한다면 백성은 곤궁해져 교묘함이 은성(화려)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소박·질박함은 품어야 할 것이로되 성지(聖智)는 버려야 할 것이다.
夫察司之簡,則避之亦簡;竭其聰明,則逃之亦察。 簡則害樸寡,密則巧僞深矣。 夫能爲至察探幽之術者,匪唯聖智哉?其爲害也,豈可記乎!故[노자58장] 光而不耀 빛나지만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
[왕필주] 以光鑑其所以迷,不以光照求其隱慝也,所謂明道若昧也,此皆崇本以息末,不攻而使復之也。 빛으로써 그들이 미혹된 까닭을 비춰보되 밝게 비춰서 그들이숨긴 것까지 찾아내지는 않으니 이른 바 밝은 도는 어두운 듯하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살리는 것이요, 말단을 치지 않고 회복시키는 것이다.百倍之利未渠多也。[노자19장] 絶聖棄智 民利百倍
성지(聖智)를 끊으면(쓰지 않으면) (그 나라의) 백성의 이익이 백 배가 된다
무릇 감시·감찰이 간략하면 회피하는 것 또한 간략해지고, 총명을 다하(여 단속하)면 도망가는 자 또한 총명하게 살필 것이다. 간결하면 질박함을 손상시킴이 줄어들고, 치밀하면 교묘한 거짓이 왕성해진다. 무릇 감춰진 것까지 지나치게 살펴서 찾아내는 술책(치술)을 쓸 수 있는 것은 성지(聖智)가 아니겠는가. 그 해됨(손해)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노자19장의) 백배의 이로움(이익)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다.
夫不能辯名,則不可與言理;不能定名,則不可與論實也。 凡名生於形,未有形生於名者也。 故有此名必有此形,有此形必有其分。 仁不得謂之聖,智不得謂之仁,則各有其實矣。
무릇 능히 이름을 분변하지 못하면 더불어 (사물의) 이치를 말할 수 없고, 능히 이름을 정하지 못하면 더불어 실상을 논할 수 없다. 무릇 이름은 형상(형체)에서 나오지, 형상이 이름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저러한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이러저러한 형상이 있고, 이러저러한 형상이 있으면 반드시 그 나뉨(구분)이 있다. 인(仁)은 성(聖)이라 말해질 수 없고, 지(智)는 인(仁)이라 말해질 수 없는 즉, 저마다 그 실상이 있는 것이다.
夫察見至微者,明之極也;探射隱伏者,慮之極也。 能盡極明,匪唯聖乎?能盡極慮,匪爲智乎?校實定名,
[노자52장]
見小曰明,守柔曰強 작은 것을 보(는 자라)면 '밝다[明]'고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자라)면 '강하다[强]'고 말한다.
[왕필주] 왕필주 원문 생략 정치를 하는 공은 큰 것에 있지 않다. 큰 것을 보는 자는 밝다고 할 수 없고 작은 것을 보는 것이야말로 밝다고 할 수 있다. 강함을 지키는 것은 강하다고 할 수 없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강하다고 할 수 있다.以觀絶聖,可無惑矣。[노자19장]
絶聖棄智,民利百倍;絶仁棄義,民復孝慈;絶巧棄利,盜賊無有。 此三者以爲文不足。故令有所屬:見素抱樸,少私寡欲。(풀이생략)
[왕필주] (왕필주 원문 생략) 성지(聖智)는 재능이 좋은(뛰어난) 것이고, 인의(仁義)는 사람이 좋은(선한) 것이며, 교리(巧利)는 쓰임(효율)이 좋은 것인데, (이 좋은 것을) 바로 끊으라고 말하는 것은 글이 심히 부족하여 그것에다 '속할(이어붙일, 복속할) 바'가 있게 하지 않으면그것(絶聖 등의 말)이 가리키는 것을 볼 방법이 없다[無以見其指]. 그래서 ~소박과욕(素樸寡欲)에 속하도록 (그것에 복속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초적주] 노자지략의 이 글귀[以觀絶聖]는, 용어의 정의와 쓰임을 정확히 하여 미혹을 없애라는 뜻으로 읽힌다.
무릇 지극히 작은 것을 살펴 보는 것은 밝음(총명)의 극치요,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궁리(모색)의 극치이다. 능히 극도의 밝음(총명)을 다하는 것은 오직 성(聖)이 아니겠는가? 능히 극도의 궁리(모색)를 다하는 것은 지(智)가 아니겠는가? 실상을 정밀히 관찰하여 이름을 규정(판정)함으로써, 성을 끊는다[絶聖]는 말(이 가리키는 것)을 볼 수 있다면, 헷갈림(미혹)을 없앨 수 있다. - 인의(仁義)] / ToTop
夫敦樸之德不著,而名行之美顯尙,則修其所尙而望其譽, 修其所道而冀其利。 望譽冀利以勤其行, 名彌美而誠愈外,[노자2장] 天下皆知美之爲美,斯惡已。皆知善之爲善,斯不善已
천하가 모두 아름다움이 아름다운 줄 알지만, 이는 추한 것이다.~
[왕필주] 美者,人心之所樂進也。美惡,猶喜怒也;~喜怒同根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이 즐겨 나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움·추함은 기쁨·성냄과 같고. ~기쁨·성냄은 뿌리가 같다.
[노자18장] [왕필주] 甚美之名生於大惡 所謂美惡同門
심히 아름다운 이름은 아주 추악한 것에서 생겨난다. 이른 바 아름다움과 추함은 (나오는) 문이 같다는 것이다.
[노자38장] [왕필주] 本在無爲 母在無名 ~名雖美焉 僞亦必生 ~雖盛其美 必有憂患 근본은 무위에 있고 어미는 무명에 있다. ~이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거짓 또한 반드시 생겨난다 . ~그 아름다움을 아무리 성대하게 하여도 반드시 우환이 생겨난다.利彌重而心愈競。[노자20장] 衆人熙熙,如享太牢,如春登臺。
뭇사람이 큰 잔치상을 받은 듯 봄날 높은 대에 오른 듯 기뻐한다
[왕필주] 衆人迷於美進 惑於榮利 欲進心競
뭇사람이 아름다움과 진전(촉진)에 길을 잃고, 영예와이득에 현혹되어, 마음이 경쟁하는 곳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는 것이다.
무릇 도탑고 소박한 덕은 드러나지 못하고 이름(명성)과 행동(품행)의 아름다움은 찬란하게 숭상받는다면, 그 숭상받는 바를 닦아 명예롭기를 바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바를 닦아 이득을 기대한다. 명예를 바라고 이득을 기대하여 행동에 힘쓰니, 명예가 아름다울수록 정성(순수한 마음)은 더욱 도외시되고, 이익이 커질수록 마음은 더욱 경쟁한다.
父子兄弟,懷情失直,孝不任誠,慈不任實,蓋顯名行之所招也,患俗薄而名興行、崇仁義,愈致斯僞,況術之賤此者乎?故 絶仁棄義以復孝慈,未渠弘也。
아비-아들과 형-아우 사이에 품는 정(情)이 충직함을 잃어, 효(치사랑)는 정성에 따르지 않고, 자애로움(내리사랑)은 실질(참다운 본성)에 따르지 않게 된 것은, 대개 이름(명성)과 행위(품행)를 찬란하게 빛내려고 함이 초래한 결과이며, 풍속이 천박함을 근심하며 좋은 행실에 힘쓰는 것을 명예롭게 여긴 탓이다. 인의를 숭상할 수록 더욱 이러한 거짓(위선)에 이르니 하물며 이보다 술책(치술)이 낮은 자는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인의를 끊으면 효성과 자애로 돌아간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 [교리(巧利)] / ToTop
夫城高則衝生,利興則求深。 苟存無欲,則雖賞而不竊;私欲苟行,則巧利愈昏。 故絶巧棄利,代以寡欲,盜賊無有,爲足美也(未足美也)。 夫[노자19장]
絶聖棄智,民利百倍;絶仁棄義,民復孝慈;絶巧棄利,盜賊無有。 此三者以爲文不足。故令有所屬:見素抱樸,少私寡欲。
(전략)교묘한 솜씨를 끊고 이익 기대를 버리면 도적이 출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세 가지만으로는 글이 부족하다고 여겨속할(이어붙이는, 복속할) 바가 있게 하니 , '소박함을 보이고 질박함을 품으라'는 것과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욕심을 작게 하라[寡欲]'는 것 이다.聖智,才之傑也; 仁義,行之大者也; 巧利,用之善者也。本苟不存,而興此三[노자19장]
絶聖棄智,民利百倍;絶仁棄義,民復孝慈;絶巧棄利,盜賊無有。 此三者以爲文不足。故令有所屬:見素抱樸,少私寡欲。
[왕필주] 聖智,才之善也。仁義,人之善也。巧利,用之善也。
성지(聖智)는 재능이 좋은(뛰어난) 것이고, 인의(仁義)는 사람이 좋은(선한) 것이며, 교리(巧利)는 쓰임(효율)이 좋은 것이다.美,害猶如之,況術之有利,斯以忽素樸乎![노자2장] (왕필주)
美者,人心之所樂進也。 美惡,猶喜怒也;~喜怒同根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이 즐겨 나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움·추함은 기쁨·성냄과 같고. ~기쁨·성냄은 뿌리가 같다.
[노자18장] (왕필주)
甚美之名生於大惡 所謂美惡同門
심히 아름다운 이름은 아주 추악한 것에서 생겨난다. 이른 바 아름다움과 추함은 (나오는) 문이 같다는 것이다.
[노자38장] (왕필주)
本在無爲 母在無名 ~名雖美焉 僞亦必生 ~雖盛其美 必有憂患
근본은 무위에 있고 어미는 무명에 있다. ~ 이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거짓 또한 반드시 생겨난다. ~그 아름다움을 아무리 성대하게 하여도 반드시 우환이 생겨난다.
무릇 성이 높으면 (뚫는) 충차가 생기고 이익이 많아지면 구하려는 마음이 강해진다. 진실로 욕심이 없게 되면 설령 상을 준다고 해도 훔치지 않을 것이요, 사사로운 욕망[私欲]을 실행한다면 교리(巧利)에 더욱 미혹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묘한 솜씨[巧]를 끊고 이익 내기[利]를 버린다면, (노자19장 하단에서 과욕(寡欲)으로 대체된 바) 욕심을 적게 하면 도둑이 없어진다는 말은 족히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지나친 찬미가 아니다).
저 성지(聖智)는 재능이 걸출한 것이고, 인의仁義)는 행위(품행)가 큰 것이며, 교리(巧利)는 효용이 좋은 것이다. 정작 근본은 실로 존립되지 않은 채, 이 세가지(성지, 인의, 교리) 아름다움을 흥하게 하면(하기만 해도), 그토록 해로운데, 하물며 술책(치술)을 폄에 이익(올리기)[利]이 (포함되어) 있어 소박(함을 보이고)·질박(함을 품는 것)을 소홀히 함에랴! - [결어] / ToTop
故古人有歎曰:甚矣,何物之難悟也!旣知不聖爲不聖,未知聖之不聖也;[노자52장] 旣知其母 復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이미 그 어미를 알았으니 다시 돌아가 그 아들을 안다. 이미 그 아들을 알았으니 다시 돌아가 그 어미를 지킨다.
[왕필주] 母本也 子末也 得本以知末 不舍本以逐末也
어미는 근본이고 아들은 말단이다. 근본을 얻어서 말단을 안다. 근본을 버리고(버리면서) 말단을 좇지(추구하지) 않는다.
[초적주] 노자지략의 사례에서, 현소포박(見素抱樸)은무명(無名) , 성지·인의(聖智·仁義)를 끊는 것은무위(無爲) , 성지·인의의 치술을 펴는 것은유위(有爲) 라고 가정해 보면, 근본(無계열)을 버리면서 말단(有계열)을 좇아서는 안되고, 근본을 지키면서 말단을 추구해야 말단의 폐해를 막고 말단을 살릴(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11장에, 유(有)가 이로운 것이 되는 까닭(이유, 원인)은 무(無)의 쓸모됨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旣知不仁爲不仁,未知仁之爲不仁也。 故[노자5장] 聖人不仁,以百姓爲芻狗
성인은 불인(不仁)하다. 백성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노자38장] 上仁爲之而無以爲~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지극히 높은 인(사랑)을 품은 사람은 인을 베풀되 베푸는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절로 그러하도록, 스스로 이루도록 맡겨두지 못하고 베푼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잃고 난 뒤에 (낮은) 덕을 내세우고 덕을 잃고 난 뒤에 인(사랑)을 내세우고 인을 잃고 난 뒤에 의를 내세우고 의를 잃고 난 뒤에 예를 내세운다.
[노자67장] 我有三寶 持而保之 一曰慈
내가 (늘) 간직하고 있는 세 가지 보배가 있다, 그 첫째는 자애로움이다
[초적주] 노자는 인(사랑)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인이 아무리 순수하더라도) 인을 베풀면 (치술로써 인을 내세우면) 절로 그러함의 천성을 망치지 않을까 염려한다. 노자5장에서 성인은 지극히 자애로운 마음으로 (무정하게) 백성을 지켜보는 상황임을직관적으로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 물론 왕필은 노자5장의 성인(聖人)과 노자19장의 성(聖)을 구분하고 있다.絶聖而後聖功全,[노자지략]
공(功)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반드시 무명(無名)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성인은 다섯 가르침을 행해도 불언(不言)을 교화의 방법으로 삼는다. ~다스림을 불언(不言)으로 하지 않으면 공을 이룰 수 없다. ~무릇 만물이 존립할 수 있는 까닭은 그 형상(드러나 보이는 모습)과 반대라는 것이고, 전공을 세우는 (공이 새겨질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 이름(드날림)과 반대라는 것이다. ~성(聖)의 공(功)이 실로 존재하더라도 성(聖)이 세운 바를 끊어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형상(드러난 것)만 보고 (숨어 있는) 도에 이르지 못하는 자는, (예를 들면 그 뛰어난 성지(聖智)를 끊으라는) 노자의 말에 반드시 화를 내고 만다.棄仁而後仁德厚。[노자지략] 무릇 만물이 존립할 수 있는 까닭은 그 형상(드러나 보이는 모습)과 반대라는 것이다. ~인덕이 실로 저명하더라도 인(仁)이 존재하는 바를 버려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형상(드러난 것)만 보고 (숨어 있는) 도에 이르지 못하는 자는, (예를 들면 그 좋은 인의를 끊으라는) 노자의 말에 반드시 화를 내고 만다.
[노자38장] [왕필주] 인의례는 다 낮은 덕(德)이다. ~높은 인은 베풀되 베푸는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예로부터) 베품이 있는 것이 행위의 근심(병)이다. 근본은 무위(無爲)에 있고 어미는 무명(無名)에 있다. 근본과 어미를 버리고 말단으로 가면 공이 비록 크다 해도 반드시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 있게 된다. ~무릇 (만물을) 대도로써 싣고 무명으로 진정시킨다면 만물은 숭상할 바(대상)가 없게 되고~인덕은 두터워진다. ~실은 것(대도)을 버리고 생겨난 데(어미)를 버리며 형상을 이룬 것을 쓰면~ 인(사랑)은 진정성의 등급을 나눈다. 그러므로인덕(仁德)이 두터운 것은 인(仁)이 능한 바를 써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써 싣고 어미[母]로써 통솔해서다 . 그러므로 그것을 찬란하게 드러내도 숭상하거나 다투는 바가 없다. 무명(無名)을 쓰므로 이름지어 도탑게 하고, 무형(無形)을 쓰므로 꼴을 지어 이루어지게 한다. 어미를 지키되 그 아들을 보존하고 근본을 숭상하되 말단을 일으키면 형상과 이름[形名]이 함께 있어 사악함이 발생하지 않는다. 크나큰 아름다움은 하늘과 짝할 만하여 겉치레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미를 멀리해서도 안되고 근본을 잃어서도 안된다. 인의는 어미가 낳은 것이지 어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상을 갖춘 그릇은 장인이 이루어 낸 것이지 장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어미(무명)를 버리고 그 아들을 쓰거나 그 뿌리(무위)를 버리고 그 말단으로 가면, 이름을 붙이면 나뉘는 바가 있고 형상이 드러나면 그치는 바(유한함)가 있게 된다. 아무리 그(형상) 크기를 극대화해도 반드시 두루 미치지 못함이 있게 되고 아무리 그(이름) 아름다움을 성대하게 하여도 반드시 우환이 있게 된다. 공(功)이 일부러 함(베품)에 있으니 어찌 그러한 데에 머무를 만하겠는가.
[초적주] 참고로, 노자38장에서 노자는 도-덕-인-의-례를 순차적으로 설명하였는데, 왕필은 인의례(仁義禮)를 묶어 하덕(下德)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인덕(仁德)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탄식하며 "심하도다. 얼마나 사물을 깨닫기 어려운가! 이미 불성(不聖)이 불성(不聖) 됨을 알면서 아직 성(聖)이 불성(不聖)인 줄 알지 못하고, 이미 불인(不仁)이 불인(不仁) 됨을 알면서 아직 인(仁)이 불인(不仁) 됨을 알지 못하는구나."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성(聖)을 끊은 뒤에 성(聖)의 공(功)이 온전하고, 인(仁)을 버린 뒤에 인덕(仁德)이 두텁다.
夫惡强非欲不强也,爲强則失强也;絶仁非欲不仁也,爲仁則僞成也。 有其治而乃亂,保其安而乃危。 後其身而身先,身先非先身之所能也;外其身而身存,身存非存身之所爲也。 功不可取,美不可用。 故必取其爲功之母而已矣。 篇云:「旣知其子,而必「復守其母」。尋斯理也,何往而不暢哉!
대저 강함을 싫어하는 것은 강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강해지면(강함을 행사하면) 강함을 잃게 되기 때문이요, 인을 끊는 것은 사람을 사랑(연민)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을 베풀면 거짓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다스림이 있으면 어지러워지고 안위를 보존하(려고 하)면 곧 위험해진다. 자신을 뒤로 물려 오히려 자신이 앞서게 된다는 것은 자신이 앞선 것이지 자신을 앞세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자신을 돌보지 않아 오히려 자신이 보존된다는 것은 자신이 보존된(온전한) 것이지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 한 바가 아니다. 공은 가지지 말 것이며 아름다움은 쓰지 말 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공의 어미가 되는 것을 가질 따름이다. 편에 이르기를 '이미 그 아들을 알았으니 반드시 다시 그 어미를 지키라'고 하였다. 이 이치를 찾으면 어딜 가더라도 창달하지 않겠는가.ver20220428bypoolpiri(초적) : 仁의 동사형 사용 정의, ver20240222(by초적):누락부위 등 일부 보완
[2022-04-22] 역주완료, [2024-02-22 java script 에러 수정 및 일부 보완]
§ 참고1 : 《老子指略》 (https://www.chineseclassic.com/content/437)
§ 참고2 : 《老子微旨例略》 (https://ctext.org/wiki.pl?if=gb&chapter=932290)
§ 참고3 : 왕필저작(판본별) (https://ctext.org/searchbooks.pl?if=gb&author=%E7%8E%8B%E5%BC%BC)
'노자 도덕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급으로 읽어본 노자 (2024여름) 초심자(입문자)를 위한 노자 도덕경 (0) | 2024.07.24 |
---|---|
노자도덕경 제1장 (2024여름) 왕필 주에 대한 해석 (노자 1장) (0) | 2024.07.13 |
노자 도덕경(왕필본)과 덕도경(백서본)의 차이 발췌 (0) | 2022.04.05 |
사진 속에 담아본 노자 도덕경 (2) (0) | 2017.05.05 |
사진 속에 담아본 노자 도덕경 (0) | 2015.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