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노자 도덕경(왕필본)과 백서본의 차이 발췌 - 노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 (1)


이곳 자료는 http://ctext.org/zh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이 사이트에 등재된 왕필주 영인본 주와 텍스트간에도 오타가 발견됨.
왕필본과 백서본 간의 차이가 나는 장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장을 임의로 발췌하여 작성하였음.
노자의 장 표기시 백서본(덕도경)도 왕필본(도덕경)의 장에 맞춰 노자의 장을 통합 표기하였음
왕필본과 백서본 간에 차이가 노자 해석에 영향를 크게 미치는 장은 [노자OO장]으로 해당 장 제목에 배경색을 표시하였음

[기휘]
[백서을본] 죽간본과 백서갑본의 방(邦)자가 국(國)으로 바뀜 / 한고조 휘 유방(劉邦) (기원전 247~195년)
[왕필본] 백서본의 항(恆)자가 상(常)으로 바뀜 / 한 태종 유항(劉恆)(기원전 202년~ 157년)




[노자35장]

[죽간본] 故道□□□□淡呵其無味也。視之不足見,聽之不足聞,而不可旣也。
[백서본] 故道之出言也曰:淡呵其無味也,見之不足見也,聽之不足聞也,用之不可旣也。
[하상공본1] 道之出口,淡乎其無味,視之不足見,聽之不足聞,用之不可旣。 ※ 河上公章句-世德堂刊本
[하상공본2] 道之出口,淡乎其無味,視之不足見,聽之不足聞,用之不足旣。
[왕필본] 道之出口,淡乎其無味,視之不足見,聽之不足聞,用之不足旣。

백서본의 용지불가기(用之不可旣)가 왕필본에서 용지부족기(用之不足旣)로 바뀌었다. 둘 다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백서본의 용지불가기(用之不可旣)는 이 문장 앞부분의 부족(不足)이 불가(不可)와 구별됨을 말해준다.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을 두고, 백서본은 '도는 보아도 볼 만한 게 못 되고 들어도 들을 만한 게 못된다'로 해석할 수 있지만, 왕필본은 '도는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백서본은 역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표현이지만 왕필본은, 노자14장의 '(하나는)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다[聽之不聞, 聽之而弗聞]'는 문구처럼 진지하고 엄숙하다.

노자35장을 백서본에 따라 해석하면, 노자12장의 '다섯 가지 빛깔·소리·맛은 사람의 눈·귀·입을 망친다'는 '오색·오음·오미(五色·五音·五味)를, 무색·무음·무미(無色·無音·無味)의 도와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무미(無味)인 도를 찾지 않는 것을 지적한 것이지 다섯 가지 맛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노자35장의 부족(不足)을 불가(不可)로 바꾸면, 화가·음악가·요리전문가가 노자12장을 읽고 노자를 경원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도지출구담호기무미(道之出口,淡乎其無味)는 도는 입밖에 내어 말해도 담백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는 뜻인 바, 입에서 나온 도를 귀로 들어도 입으로 그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표현은 얼마나 익살스러운가. 이처럼 노자 저작자가 역설적 언어를 구사하면서 지적 수준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면 노자45장의 청정(清靜)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에게 깨끗하고 고요한(근본을 중시하는) 사람이 되라고 순진하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 사람들이 있음[下士聞道 大笑之]을 노자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정은 순진·순수하거나 바보 같은 사람이나 추구하는 하찮은 것이라고 (일부 머리만 발달한 사람은)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탁하고 말초적인 것보다 깨끗하고 근본을 중시하는 청정이야말로 진정 큰 기술이라는 의미로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보면, 노자의 어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왕필은 노자35장의 반어적 표현을 좋아하지 않았거나, 노자14장의 '하나'에 대한 묘사를 노자35장의 '도'에 대한 묘사와 매치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노자 35장에서 불가(不可)를 부족(不足)으로 바꿀 이유가 없다. 약관의 천재 왕필은 그 당시, 지나치게 사변적으로 노자를 이해한 듯하다.

도(道)는 머리로 사변할 수도 있지만 노자의 보배는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다.. 노자의 출발점은 도(道)가 아니라 노자의 '보배'라고 가정해 보면, 노자의 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노자는 자신의 첫째 보배를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로, 왕의 욕심[欲]과 머리만 발달한 사람[知]을 중용하는 것, 전쟁을 부추기는[强] 왕의 보좌관 등을 지목하였다(我欲不欲 而民自樸 / 不尙賢 使夫知者不敢爲也 /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強天下 其事好還). 그리고 노자가 노자의 보배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 것도 수긍할 수 있으리라.




[노자1장]
[백서본] 道可道也,非恆道也。名可名也,非恆名也。無名萬物之始也;有名萬物之母也。
[왕필본] 道可道,非道。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有名萬物之母。
[초적주] 백서본의 항(恆)이 왕필본에서 모두 상(常)으로 바뀌었다. 노자 16장의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容乃公'과 노자52장의 '是爲習常, 是胃襲常' 그리고 노자55장의 '知和曰常,知常曰明' 은 백서본에서도 상(常)이다. 백서본의 항(恆)은 형용사 또는 부사로 사용되었는데, 왕필은 노자 주석에서 상(常)을 명사형으로 바꿔 사용한 곳이 발견된다.

백서본의 '무명만물지시(無名萬物之始) 유명만물지모(有名萬物之母)'는 유와 무가 거의 동격이나, 왕필본에서 백서본의 무명만물지시(無名萬物之始)를 무명천지지시(無名天地之始)로 바꿔 무와 유의 지위에 미묘한 변화를 줄 여지를 남겨놓았다.


[노자3장]
[백서본] 使夫知不敢弗爲而已,則無不治矣。
[왕필본] 使天知者不敢爲也。爲無爲,則無不治
[초적주] 백서본은 '무릇 지자로 하여금 용감해지지 않도록 하고 하지 못하게만 한다. 그러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로 해석되고, 왕필본은 '무릇 지자로하여금 감히 하지 못하게 하고 무위를 실천한다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로 해석된다. 참고로 노자64장에 '(성인은) 만물이 스스로 그러하도록 도우며 결코 억지로 하지 않는다[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는 내용이 있다.


[노자8장]
[백서본] 居善地,心善淵,予善天,言善信,正善治,事善能,動善時。
[왕필본] 居善地,心善淵,與善仁,言善信,正善治,事善能,動善時。
[초적주] 백서본의 여선천(予善天, 줄 때의 선은 하늘이다)이 왕필본에서는 여선인(與善仁, 함께 할 때의 선은 인(사랑)이다)으로 바뀌었다.


[노자10장]
[백서본] 明白四達,能毌以知乎? 밝고 환하게 통달해도 지식·지혜·지략으로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왕필본] 明白四達,能無知乎? 밝고 환하게 통달해도 무지할 수 있겠는가?
[초적주] 백서본의 무이지(毌以知 ; 지식·지혜로써 하지 않음)가 왕필본에서 무지(無知 ; 지식을 없앰)로 바뀌었다. 왕필본에서, 노자10장의 무지(無知)와 다른 장의 무지(無知)는 의미가 다르다.


[노자13장]
[백서본] 貴爲身於爲天下,若可以託天下矣;愛以身爲天下,女可以寄天下矣 / 백서갑본과 을본 조합
[왕필본] 貴以身爲天下,若可寄天下;愛以身爲天下,若可託天下。
[초적주] 백서본의 귀위신어위천하(貴爲身於爲天下)는 '천하를 위하는 것보다 자신을 위하는 것을 중시한다'로 해석되나 왕필본위 귀이신위천하(貴以身爲天下)는 '자신을 천하로 여기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또는 '자신을 귀하게 여기듯 천하를 위한다'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노자14장]
[백서본] 執今之道,以御今之有。以知古始,是胃道紀。
[왕필본] 之道,以御今之有。知古始,是謂道紀。
[초적주] (성인은) 오늘날의 도를 파악하여 (오늘날의 길을 잡아) 오늘날 있는 것을 제어하면서도 (오늘날 있는 것을 그 길로 몰아가면서도) 옛날의 비롯됨(길이 비롯된 곳)을 알고 있으므로 이를 두고 (내 도는) 도의 벼리 곧 모든 도를 망라하여 코를 꿴 도 (모든 길의 첫머리)라고 하는 것이다. 라는 백서본의 내용이 왕필본 내용보다 적합하다고 본다 .


[노자18장]
[죽간본] 故大道廢,安有仁義。六親不和,安有孝慈。邦家昏□,安有正臣。
[백서본] 故大道廢,安有仁義;知慧出,安有大僞;六親不和,安又孝茲;國家昏亂,安有貞臣
[왕필본] 大道廢,有仁義;智慧出,有大僞;六親不和,有孝慈;國家昏亂,有忠臣。
[초적주] 왕필본의 '대도가 무너지자 인의가 생겨났다[大道廢,有仁義]'와 죽간본이나 백서본의 '대도가 무너졌는데 어찌 인의가 있겠는가?[大道廢,安有仁義]' 는 의미가 다르다.


[노자19장]
[죽간본] 絶智棄辯,民利百倍。絶巧棄利,盜賊亡有。絶偽棄慮,民復季子。
[백서본] 絶聖棄知,而民利百倍;絶仁棄義,而民復孝茲;絶巧棄利,盜賊無有。
[왕필본] ,民利百倍;絶,民復孝慈;絶巧棄利,盜賊無有。
[초적주] 죽간본에 없던 성지(聖智, 聖知)와 인의(仁義)라는 용어가 백서본과 왕필본에 등장한다. 백서본의 지(知)가 왕필본에서는 지(知)와 지(智)로 분화되었다. 왕필은 '노자지략'에서 성지(聖智)와 인의(仁義)에 대해 중점적으로 서술하였다.


[노자20장]
[죽간본] 美與惡,相去何若?人之所畏,亦不可以不畏人。
[백서본] 美與惡,其相去何若?人之所畏,亦不可以不畏人。
[왕필본] 善之與惡,相去若何?人之所畏,不可不畏。
[초적주] 왕필본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人之所畏,不可不畏]'와 백서본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바(군주)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人之所畏,亦不可以不畏人]'는 의미가 다르다.


[노자23장]
[백서본] 希言自然,飄風不冬朝,暴雨不冬日。
[왕필본] 希言自然,飄風不終朝,驟雨不終日。
[초적주] 백서본의 '말을 적게하면 스스로 그러하게 된다. 회리바람은~[希言自然,飄~]'와 왕필본의 '말을 적게 하면 절로 그렇게 된다. 그러므로 회리바람은~[希言自然,故飄~]'는 뒷 문장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고(故)자가 없는 백서본이 문맥상 타당하다고 본다. 희언자연(希言自然)을 백서본의 의미와 다르게 해석한 사람이 훗날 고(故)자를 삽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자24장]
[백서본] 物或惡之,故有欲者弗居。
[왕필본] 物或惡之,故有道者不處。
[초적주] 노자24장(백서본66장)과 노자31장(백서본75장)의 유욕자(有欲者)라는 문구가 왕필본에서는 유도자(有道者)로 바뀌었다. 백서본의 유욕자(有欲者)는 노자1장의 '유욕(有欲)'을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자26장]
[백서본] 是以君子眾日行不離(遠)其甾重。
[왕필본] 是以聖人終日行不離輜重。
[초적주] 백서본의 군자(君子)가 왕필본에서 성인(聖人)으로 바뀌었다. 급이 다르다.


[노자28장]
[백서본] 恆德不貸(貣)~樸散則爲器,聖人用,則爲官長,夫大制無割。
[왕필본] 常德不忒~樸散則爲器,聖人用之,則爲官長,故大制不割。
[초적주] 백서본의 항덕불대(특)(恆德不貸(貣))이 왕필본에서 항덕불특(常德不忒)으로 바뀌었다.
왕필본의 성인용지(聖人用之)는 '성인이 그것을 쓴다'로 해석되지만 백서본의 성인용(聖人用)은 '성인이 쓰인다'로 해석될 수도 있다.


[노자30장]
[죽간본] 以道佐人主者,不欲以兵強於天下。~果而弗伐,果而弗驕,果而弗矜,是謂果而不強。
[왕필본] 以道佐人主者,不以兵強天下。~果而勿矜,果而勿伐,果而勿驕。果而不得已,果而勿強
[초적주] 왕필본의 불이병강천하(不以兵強天下)는 '군대로써 천하를 강압하지 않는다'로 해석되나, 죽간본의 불욕이병강어천하(不欲以兵強於天下)는 군대로써 천하에서 강해지려고(강한 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왕필본의 과이물강(果而勿強)은 '전과를 거두되 강해지지 말라'라고 해석되나, 백서본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를 뭉뚱그려 '전과를 거두되 강해지지 않음이라고 한다'라고 해석된다.


[노자32장]
[죽간본] 道恒亡名,樸,雖細,天地弗敢臣 ~始制有名。名亦既有,夫亦將知之,知之所以不殆。
[백서본] 道恆無名。樸唯小而天下弗敢臣。~始制有名,名亦既有,夫亦將知止,知止所以不殆。
[왕필본] 道常無名。天下莫能臣也。~始制有名,名亦既有,夫亦將知,知所以不殆。
[초적주] 백서본의 '도항무명 박유소이천하불감신(道恆無名。樸唯小而天下弗敢臣)'은 '도는 항상 크다. 그리고 질박하고 아주 작지만 천하의 그 누구도 도를 신하로 삼지 못한다'는 뜻이다. 죽간본과 백서본의 이 '박, 세·소(樸, 細·小)'가 왕필본에서는 삭제되었다. (왕필의 주석에서 樸은 회생하였지만) 왕필이 이해한 노자의 도(道)는 크고[大] 무형·무명이므로 도는 작다[小, 細]는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우기 왕필본 노자67장에서도 '내 도는 작은[細] 존재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노자67장(백서본32장)의 백서본은 왕필본과 달리, '내 도'가 아니라 '나는' 작은 존재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므로, 도는 작은 존재가 될 수 있고, 노자34장에도 '도는 작다고 이름지을 수도 있고 크다고 이름지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왕필은 노자32장과 노자67장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원문을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자34장]
[백서본] 道汎(渢)呵,其可左右也~萬物歸焉而弗爲主 則恆無欲也 可名於小 萬物歸焉,而弗爲主,可命於大。
[왕필본] 道汎兮,其可左右。 ~衣養萬物而不爲主,常無欲,可名於小;萬物歸焉,而不爲主,可名爲大。
[초적주] 백서본의 도(道)가 왕필본에서 대도(大道)로 바뀌었다. 도는 작다고 이름할 수도 있으므로[可名於小], 왕필본에서 대(大) 자를 굳이 추가해야 할 이유가 없다.


[노자35장]
[죽간본] 故道□□□□淡呵其無味也。視之不足見,聽之不足聞,而不可旣也。
[백서본] 道之出言也:淡呵其無味也,見之不足見也,聽之不足聞也,用之不可旣也。
[왕필본] 道之出口,淡乎其無味,視之不足見,聽之不足聞,用之不足旣。
[초적주] 백서본의 용지불가기(用之不可旣)가 왕필본에서 용지부족기(用之不足旣)로 바뀌었다. 백서본의 용지불가기(用之不可旣)는 이 문장 앞부분의 부족(不足)이 불가(不可)가 아님을 말해준다. 청지부족문(聽之不足聞)을 두고, 백서본은 '도는 들어도 들을 만한 게 못된다'로 해석될 수 있지만, 왕필본은 '도는 들어도 들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백서본은 옛말일 가능성이 있다.


[노자36장]
[백서본] 將欲翕之,必古張之;將欲弱之,必古強之;將欲去之,必古與之;將欲奪之,必古予之。
[왕필본] 將欲歙之,必張之;將欲弱之,必固強之;將欲廢之,必固興之;將欲奪之,必固與之。
[초적주] 백서본의 고(古)가 왕필본에서 고(固)로 바뀌었다. 백서본의 장욕흡지필고장지(將欲翕之,必古張之)는 장차 움츠러들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예전에 폈다는 뜻이고, 왕필본의 장욕흡지필고장지(將欲歙之,必固張之)는 장차 음츠러들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확실히(당연히) 그것을 펴라는 뜻이다. 이 문장의 주어는 백서본의 경우 자연(自然, 절로 그렇게 됨)이 될 수 있지만 왕필본의 경우 사람이 될 수 있다. 왕필본 노자36장으로 인해 '노자'를 처세술 관련 책자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노자37장]
[죽간본] 道恒亡爲也~將正之以亡名之樸~不欲以靜,天下將自定
[백서본] 道恆無名~吾將闐之以無名之樸~不辱以靜,天地將自正
[왕필본] 道常無爲而無不爲 ~吾將鎭之以無名之樸~知足以靜,萬物將自定
[초적주] 죽간본의 망위(亡爲, 무위)와 백서본의 무명(無名)이 왕필본에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로 바뀌었다. 왕필본에서 추가된 무불위(而無不爲)는 사족으로 보인다. 오히려 무불위(無不爲)가 없는 것이 문맥상 적절해 보인다. 노자48장의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는 죽간본과 왕필본이 일치된다. 참고로 죽간본의 망(亡)은 왕필본의 무(無)에 해당한다.


[노자38장]
[백서본] 上德無爲而無以爲也;上仁爲之而無以爲也。上義爲之而有以爲也;上禮爲之而莫之應也,則攘臂而乃之。
[왕필본] 上德無爲而無以爲;下德爲之而有以爲。上仁爲之而無以爲;上義爲之而有以爲。上禮爲之而莫之應,則攘臂而扔之。
[초적주] 백서본에 없던 하덕위지이유이위(下德爲之而有以爲)가 왕필본에 추가되었다. 왕필은 노자 주에서 '무위하지 못하고 베풀어 행하는 것은 모두 하덕(下德)으로, 인의예절이 그것이다 [凡不能無爲而爲之者 皆下德也 仁義禮節是也 ]' 라고 하여, 하덕(下德)에 인의예(仁義禮)를 포함시겼다. 그리고 하덕 중에 맨 위 자리는 상인(上仁)으로서 무위이{無以爲)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베푼다(행한다)라고 서술하였다. 왕필본에 추가된 하덕(下德)은 유이위(有以爲)의 레벨이라[下德爲之而有以爲]는 내용과 상치된다. 그리고 하덕에 인의례를 포함시킴으로써 노자 38장 하단의 '도를 잃은 뒤에 덕, 덕을 잃은 뒤에 인 (故失道而後德,失德而後仁,失仁而後義,失義而後禮)'이라는 문구와도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 하덕위지이유이위(下德爲之而有以爲)라는 문구를 굳이 삽입할 이유가 없었다고 본다. 참고로 무이위(無以爲}는 베푸는 까닭(이유, 의도)이 없다는 뜻이다.


[노자39장]
[백서본] 昔得一者:天得一以淸;地得一以寧;神得一以靈;浴得一盈;侯王得一以爲天下正
[왕필본] 昔之得一者:天得一以淸;地得一以寧;神得一以靈;谷得一以盈;萬物得一以生;侯王得一以爲天下
[초적주] 백서본에 없던 만물득일이생(萬物得一以生)이 왕필본에 추가되었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셋을 만물을 낳았지만, 만물 가운데 (유래된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이 '하나'를 터득한 존재가 바로 하늘·땅·신·계곡·후왕이라는 것이 본장의 내용인 바, 특별한 존재를 말하면서 그것에 만물을 포함시킨 것은 내용상 적절치 않다. 또한 만물의 범주에 계곡·후왕 등을 제외시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백서본처럼 만물득일이생(萬物得一以生)이 없는 게 맞다. 그리고 백서본의 천하정(天下正)은 천하의 우두머리는 뜻으로, 왕필본의 천하정(天下貞)보다 본 장의 내용에 부합된다.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 천하의 왕이라는 특별한 경지(위치)에 이르렀음을 표현해야 문맥상 타당하다고 본다.


[노자40장]
[죽간본] 返也者,道動也。弱也者,道之用也。天下之物生於有,生於亡。
[백서본] 反也者,道之動也。弱也者,道之用也。天下之物生於有,有於無。
[왕필본] 者道之動;弱者道之用。天下萬物生於有,有生於無
[초적주] 죽간본의 반(返)이 왕필본에서 반(反)으로 바뀌었다. 죽간본에는 반(反)자가 없고 왕필본에는 반(返)자가 없다. 반(反)은 반(返)에 비해 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죽간본의 생어망(生於亡)과 백서본의 유어무(有於無)가 왕필본에서 유생어무(有生於無)로 바뀌었다. 유와 무가 죽간본과 백서본에서는 공생 관계인 반면에 왕필본에서는 종속 관계이다. 노자1장에서 백서본의 '무명만물지시 유명만물지모(無名萬物之始 有名萬物之母)' 가 왕필본에서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無名天地之始,有名萬物之母)'로 바뀌는 데에 양장간 서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유와 무가 종속적이려면 백서본의 '無名萬物之始 有名萬物之母'란 문구가 거슬리기 때문이다.


[노자41장]
[죽간본] 大器曼成~天象亡形
[백서본] 大器免成~天象無刑 道褒無名。夫唯道,善始且善成。
[왕필본] 大器成~大象無形 道隱無名。夫唯道,善且成。
[초적주] 죽간본의 대기만성(大器曼成)과 백서본의 대기면성(大器免成)은 '큰 그릇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석될 수 있으나 왕필본의 대기만성(大器晩成)은 '큰 그릇은 더디 만들어진다'라고 해석된다. 노자28장에서 백서을본 항덕불대(恆德不貸)의 대(貸)와 백서갑본 항덕불특(恆德不貣)의 특(貣)은 '강제로 빌리거나 얻어낸다'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노자41장 왕필본 선대차성(善貸且成)의 대(貸)는 '빌려준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백서본의 선시차선성(善始且善成)의 의미는 노자의 기본내용과 부합되어 이해하기 쉽다. 노자41장 왕필본 대(貸)는, 잘 빌려준다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더라도, 노자34장의 '도는 만물을 입히고 기르며 만물이 귀의해도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다. 덕이 있는 사람이 잘 빌려준다[有德司契]는 내용이 있긴 하다. 도(道)가 잘 빌려준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연구대상이다.


[노자49장]
[백서본] (聖)人恆無心,以百省之心爲心。
[왕필본] 聖人無常心,以百姓心爲心
[초적주] 백서본의 성인항무심(聖人恆無心)이 왕필본에서 성인무상심(聖人無常心)으로 바뀌었다. 백서본의 항(恆)은 부사 위치에 있고 왕필본 상(常)은 형용사 위치에 있다. 왕필본은 상(常)에 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자50장]
[백서갑] 蓋聞善執生者,陵行不辟兕虎
[왕필본] 蓋聞善攝生者,陸行不兕虎
[초적주] 백서본의 '코뿔소나 호랑이를 피하지 않는다[陵行不辟兕虎]'가 왕필본에서 '코뿔소나 호랑이를 만나지 않는다[陸行不遇兕虎]'로 바뀌었다. 백서본의 '삶을 잘 건사하는 사람'은 능동적 주체이고 스스로 대처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바, 노자의 스스로 그러함[自然]의 정신에 부합된다.


[노자51장]
[백서본] 道生之而德畜之,物刑之而器成之。是以萬物尊道而貴德。道之尊,德之貴也,夫莫之爵也,而恆自然也。
[왕필본] 道生之,德畜之,物形之,成之。是以萬物莫不尊道而貴德。道之尊,德之貴,夫莫之常自然。
[초적주] 백서본의 '도생지이덕축(휵)지 물형지이기성지(道生之而德畜之,物刑之而器成之)'에서 이(而)는 도덕(道德)이 물기(物器)와 대구를 이루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한다. 왕필본에서는 이 이(而)를 생략하여 도덕물세(道德物勢)가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백서본은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기르나니 만물은 저마다 꼴을 갖추고, (꼴을 갖춘) 그릇은 저마다 완성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으나 왕필본은 지(之)를 만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어 물형지(物形之)를 해석하기 어려워진다.

노자56장에 '그와 친해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고 그를 이롭게도 해롭게도 할 수 없고, 그를 귀하게도 천하게도 할 수 없으므로 그는 하늘아래 가장 귀한 존재가 된다'라고 해석되는 내용이 있다. 노자51장에서 왕필본처럼 '도와 덕이 존귀한 것은 아무도 그것을 명하지 않아도 항상 그러하다[道之尊,德之貴,夫莫之命常自然]'는 문구보다 백서본처럼 '도와 덕이 존귀한 것은 아무도 도와 덕에게 작위를 내리지 않아도 항상 그러하다[道之尊 德之貴也 夫莫之爵也 而恆自然也]'는 문구가, 노자56장 해석에 도움이 된다. 노자51장에서 백서본은 '도와 덕'을 '도를 터득한 사람과 덕을 행하는 사람'으로 해석하여 (도와 덕에게) 작위를 내린다는 표현을 사용했고 왕필본은 도와 덕을 개념적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에게) 명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노자52장]
[백서본] 旣得其母,以知其子;旣知其子,復守其母,沒身不殆 ~是胃襲常
[왕필본] 其母,知其子,旣知其子,復守其母,沒其不殆。~是爲習常
[초적주] 백서본의 '기득기모 이지기자(旣得其母,以知其子)'가 왕필본에서 '기지기모 부지기자(旣知其母,復知其子)'로 바뀌었다. 백서본의 '기득~기지(旣得~旣知)' 형태의 대구(對句)가 왕필본에서 '기지~기지(旣知~旣知)' 형태의 대구로 바뀌었다. 노자에서 도(道)나 하나[一]와 관련된 용어는 위도자(古之善爲道者), 유도자(有道者), 문도(上士聞道 勤而行之), 포일(抱一), 득일(得一), 지고시(知古始) 등인 바, 지기모(知其母)보다 득기모(得其母)가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어였던 듯하다. 왕필은 노자지략에서 '기지~기지(旣知~旣知)' 형태의 멋진 문장을 구사한 바 있다.


[백서본] 使我介有知,行於大道,唯他是畏。
[왕필본] 使我介然有知,行於大道,唯是畏。
[초적주] 백서본의 타(他)가 왕필본에서 시(施)로 바뀌었다. 백서본 오타여부 확인이 필요하다.


[노자55장]
[죽간본] 終日乎而不憂 和之至也 和曰常 知和曰明~我欲不欲而民自樸
[백서본] 終曰號而不嚘 和之至也 和曰常 知常曰明~我欲不欲,而民自樸
[왕필본]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 和曰常 知常曰明~我無欲而民自樸
[초적주] 왕필본에서 지(知)가 추가되었다.


[노자57장]
[죽간본] 法物滋章盜賊多有
[백서본] 法物茲彰 而盜賊多有
[왕필본] 法令滋彰,盜賊多有
[초적주] 백서본의 법물(法物)이 왕필본에서 법령(法令)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법물(法物)은 고대 제왕의 의장(儀仗)이나 종묘 제사용 기물이란 뜻이다. 본 문장에 이를 적용하면, 백서본의 '법물자창이도적다유(法物茲彰 而盜賊多有)'는 권력자가 (질박함을 보이지 않고) 사치하면, 도적이 많이 생긴다는 뜻이 된다.


[노자60장]
[백서본] 非其神不傷人也,聖人亦弗傷也
[왕필본] 非其神不傷人,聖人亦不傷
[초적주] 백서본의 성인역불상(聖人亦弗傷 ; 성인 또한 그것을 해치지 않는다)이 왕필본에서 성인역불상인(聖人亦不傷人 ; 성인 또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으로 바뀌었다. 백서본의 '그것'은 '신령'일 수도 있다.


[노자61장]
[백서본] 大國者下流也,天下之牝,天下之交(郊)也~小國以下大國,則取於大國(邦)
[왕필본] 大國者下流,天下之交天下之牝。~小國以下大國,則取大國
[초적주] 백서본과 왕필본에서 천하지빈(天下之牝)과 천하지교(天下之交) 위치가 서로 바뀌었다. 이부분 백서본은 '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고 천하의 암컷과 같아 천하의 사람들이 (모여) 교차·교제하는 곳이다'라고 해석되고, 왕필본은 '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아 천하의 사람들이 교차·교제하는 곳이고, 천하의 암컷이다'라고 해석된다. 유교 입장에서는 천하의 암컷[天下之牝]이 천하의 사람들이 교차·교제·교배하는 곳[天下之交] 뒤에 위치하는 게 타당하다고 보고 위치를 바꿨을 수 있다.


[노자65장]
[백서갑] 故曰:爲道者,非以明民也,將以愚之也
[백서을] 古之爲道者,非以明□□□□□之也。
[왕필본] 古之善爲道者,非以明民,將以愚之。
[초적주] 백서갑본의 고왈(故曰)이 백서을본과 왕필본에서 삭제되었다. 고왈(故曰)은 '옛말에, 옛속담에' 또는 '말하자면,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왕필은 노자주에서 왕필의 해설이 아닌 노자 원본을 인용할 때 고왈(故曰)을 사용했고 노자지략에서는 노자 원본을 인용할 때 시이편운(是以篇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노자66장]
[죽간본] 聖人之在民前也,以身後之;其在民上也,以言下之
[백서본] 聖人之欲上民也,必以其言下之;其欲先民也,必以其身後之。
[왕필본] 聖人欲上民,必以言下之;欲先民,必以身後之。
[초적주] 왕필본의 '성인욕상민 필이기언하지(聖人欲上民 必以其言下之)'는 성인이 백성 위에 있고자 할 때는 반드시 자신을 뒤세운다는 뜻이고 죽간본의 '기재민상야 이언하지(其在民上也,以言下之)'는 성인이 백상 위에 있을 때는 말로써 자신을 낮춘다는 뜻이다. 비슷한 내용을 두고, 죽간본은 노자의 진심을 왕필본은 노자의 처세술(통치술)을 부각시키고 있다.


[노자67장]
[백서갑] □□□□□□□□。夫唯□,故不宵。若宵,細久矣。~天將建之,女以茲垣之。
[백서을] 天下□胃我大,大而不宵。夫唯不宵,故能大。若宵久矣,其細也夫!~天將建之,如以茲垣之。
[왕필본] 天下皆謂我大,似不肖。夫唯大,故似不肖。若肖久矣。其細也夫!~天將救之,以慈衛之。
[초적주] 본장의 백서본은 '나는 크다. 작은 존재가 아니다'라는 뜻이고 왕필본은 '내 도는 크다 작은 존재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왕필은 나름대로 노자67장과 노자32장을 모순되지 않게 해석하려고 노력하여 노자32장을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자70장]
[백서본] 知我者希,則我貴矣
[왕필본] 知我者希,則我者貴
[초적주] 백서본의 '나를 아는 이가 드문 즉 내가 귀하다 [知我者希 則我貴矣]'는 내용이, 왕필본에서 '나를 아는 이는 드물고 나를 본받는 자는 귀하다 [知我者希 則我者貴]'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왕필본에서는 자(者)를 추가하여 전후 대구를 만들었다. 뜻이 변경되는 것을 감수하며 운을 맞춘 듯하다.


[노자71장]
[백서갑] 知不知尚矣;不知不知,病矣。是以聖人之不病,以其□□□□□□。
[백서을] 知不知尚矣,不知知,病矣。是以聖人之不□也,以其病病也,是以不病。
[왕필본] 知不知上;不知知病。夫唯病病,是以不病。聖人不病,以其病病,是以不病。
[초적주] 백서본과 왕필본의 자구 배치가 상이하다. 이 장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노자72장]
[백서본] 民之不畏畏,則大畏將至矣。毌閘(狹)其所居 毌猒其所生 夫唯弗猒,是以不猒
[왕필본] 民不畏,則大至 無狎其所居,無厭其所生。夫唯不厭,是以不厭
[초적주] 백서본의 '백성이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두려움이 닥칠 것이다'가 왕필본의 '백성이 위엄(두려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위엄(두려운 일)이 닥칠 것이다' 로 바뀌었다. 뜻은 대동소이하다.


[노자73장]
[백서본] 勇於敢則殺 勇於不敢則栝
[왕필본] 勇於敢則殺,勇於不敢則
[초적주] 노자74장에서 성인 또는 통치자가, 기이한 짓을 하는 사람을 잡아 죽일 수 있다 하더라도 감행하지 말고 하늘에 맡기라는 내용에 감(敢)이 등장한다. 노자74장의 감(敢)과 본 장의 감(敢)이 동일하다면, 백서본의 감행하는 데 용감한 자[勇於敢者]는 통치자를 말한다. 왕필본의 '감행하는 데 용감한 자[勇於敢]'는 통치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뜻을 명확히 전달하려면 자(者)가 있는 쪽이 좋겠다. 그리고, 백서본의 괄(栝)이 활(活)로 바뀌었다. 괄(栝)은 교정한다는 뜻이다. 노자11장에서 백서본의 애국괄민(愛民栝國)이 왕필본의 애국치민(愛民治國)으로 바뀐 바 있다.


[노자75장]
[백서본] 人之飢也,以其取食稅之多,是以飢。百生之不治也,以其上之有以爲也,□以不治。夫唯無以生爲者,是賢貴生。
[왕필본] 民之飢,以其食稅之多,是以飢。民之難治,以其上之有爲,是以難治。夫唯無以生爲者,是賢貴生。
[초적주] 백서본의 시현귀생(是賢貴生)은 '이는 삶을 아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고, 왕필본의 시현어귀생(是賢於貴生)은 '이는 삶을 소중이 여기는 것보다 낫다(현명하다)'는 뜻으로 해석이 상반된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