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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쇄원 (2022년 11월)

 

소쇄원(瀟灑園)은 전남 담양군(潭陽郡) 가사문학면(歌辭文學面, 옛 南面) 지곡리(芝谷里)에 있는 원림(園林)으로 조선 중기 양산보가 조성하였다.

 

△ 대숲과 섶다리

소쇄원 입구 대숲
소쇄원48영의 대나무밭을 통과하는 위태로운 다리[危橋]인 듯

 

△ 대봉대 (待鳳臺)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아니하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그 봉황새를 기다리는 곳
정자 아래 나무 홈대를 타고 흐르는 물은 작은 못에 머물고, 넘치는 물은 물레방아를 돌렸다고 한다.

대봉대의 초정(草亭)
광풍각에서 바라본 대봉대
봉황을 기다리는 곳, 대봉대
나무 홈대[刳木, 고목]로 작은 못[小塘]에 물을 댄다

 

△ 광풍각(光風閣)

제월광풍(霽月光風)은 음우회명(陰雨晦冥)과 대비되는 글귀로, 비 갠 뒤 밝은 달빛과 맑은 바람처럼 정치가 청렴하고 인품이 (마음에) 거리낌 없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라 함.

 

△ 오곡문에서 제월당 가는 길

바람은 막고 물은 통과 시키는 담장,  꽃 핀 화단을 지나면 안채인 제월당에 이른다.

담장이 끊긴 곳에 오곡문(五曲門)이 있었다고 한다.
오곡문 앞 외나무 다리[略彴, 략작]
오곡문에서 제월당 가는 길에 화계(花階, 화단, 화대)가 조성되어 있다
제월당(霽月堂)

 

△ 다녀와서

 

2022년 11월 초 담양 소쇄원을 찾았다.  소쇄원과 관련된 사람들을 추려보았다.

 

  •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년~1583년, 담양출신)은 1533년 면앙정을 세웠고, 그곳에 김인후·고경명·이황·윤두수·양산보 등의 많은 인사들이 출입하며 시를 지었다. 그의 문하는 김인후, 기대승, 고경명, 정철 등이다. 소쇄원이라는 이름도 송순이 지었다고 한다.
  •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 1503~1557, 창평(담양)출신)는 조광조(1482~1520)의 제자로서 조광조가 죽자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소쇄원을 짓고 은둔 처사로서 살았다. 차남 양자징(梁子澂)은 김인후(김린후)의 사위가 되었다.
  •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장성출신)는 1548년 소쇄원48영(瀟灑園四十八詠)이라는 시를 지었다. 김인후는 양산보를 형으로 예우했고 사돈의 연을 맺었다.
  • 제봉(霽峯) 고경명(髙敬命, 1533~1592, 광주출신)은 유서석록(遊瑞石錄)에 소쇄원 탐방기를 남겼다. 1574년 당시 광주목사 임훈(林薰)과 동행한 고경명은 양산보의 아들 양자징을 만났다고 기록했다.
  •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년~1594년, 한성출신, 창평(담양) 이주)는 소쇄원제초정(瀟灑園題草亭)이라는 시를 지었다.
  • 방암(方菴) 양경지(梁敬之, 1662~1734)가 1690년대에 소쇄원30영(瀟灑園三十詠)이라는 시를 지었다.

[2022-12-1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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