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2003여름~2007갈) Seoraksan(Mt) 강원 양양군, 인제군, 속초시

▣ 설악산 / 雪嶽山 / Seoraksan(Mt) (2003년~2007년)

  • 설악산으로

    • 설악산은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인제군(麟蹄郡, 린제군), 속초시(束草市)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 높이는,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해발 1,708 미터이다.  

      설악산은 백두대간에 솟았으며 미시령-공룡릉-중청-한계령-점봉산(點鳳山)이 설악산의 백두대간 구간이다. 이 구간의 서쪽을 내설악이라 하고 내설악의 수렴동 계곡 등의 물은 바로 곁의 동해를 놔두고 북한강으로 흘러들어 멀리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설악산에는 볼거리가 많다.  공룡릉·용아릉(출입금지) 등의 암릉,  백담사계곡·수렴동(水簾洞)·구곡담(九曲潭)·가야동(伽倻洞)계곡(출입금지)·주전골·십이선녀탕계곡 등의 골짜기, 울산바위·망경대(望鏡臺)·권금성(權金城) 등의 바위 전망대, 비룡폭포·토왕성폭포(土旺城瀑布, 출입금지)·대승폭포·쌍폭(雙瀑) 등의 폭포,  백담사(百潭寺)·봉정암(鳳頂庵)·신흥사(神興寺)·오세암(五歲庵) 등의 사찰, 와선대·비선대·금강굴·흔들바위·옥녀탕......


    • 설악산 가는 길

      ¶ 원통에서 한계령 방향 44번 국도에서 장수대(대승폭포), 한계령(중청봉, 귀때기청봉), 오색(중청봉) 들머리로, 
      ¶ 원통에서 미시령 방향 46번 국도에서 남교리(십이선녀탕계곡), 용대리(백담사, 수렴동, 구곡담, 공룡릉) 들머리로,
      ¶ 속초시 설악동 (권금성, 비룡폭포, 금강굴, 양폭, 울산바위, 공룡릉, 소청, 대청) 들머리로 설악산에 든다.


    • 설악산 안내도 

        

    • 산행코스

      ▲ 대청봉 산행코스
      ¶ 설악동 - 비선대 - 천불동- 소청봉 - 중청봉 - 대청봉
      ¶ 용대리 - 백담사 - 수렴동계곡 - 구곡담계곡 - 봉정암 - 소청봉 - 중청봉 - 대청봉
      ¶ 오색 or 한계령 - 중청봉 - 대청봉
      ¶ 남교리(12선녀탕계곡) or 장수대(대승폭포) - 대승령 - 서북릉선 - 대청봉

      ▲ 공룡릉 산행 코스 
      ¶ 설악동 → 비선대 → 마등령 → 공룡릉 → 무너미고개 → 설악동 (20km, 14시간) 
      ¶ 설악동 → 비선대 → 천불동 → 무너미고개 → 공룡릉 → 마등령 
      ¶ 오색or한계령 → 중청봉 (대청봉) → 소청봉 → 희운각 → 무너미고개 → 공룡릉 → 마등령 
      ¶ 용대리 → 백담사 → 수렴동계곡 → 봉정암 → 소청봉 → 희운각 → 공룡릉 → 마등령 
      ¶ 용대리 → 백담사 → 오세암 → 마등령 → 공룡릉 → 무너미고개

  • 설악산에 들어

    • 수렴동 ~ 구곡담 계곡 2003

      옥색 물빛과 단풍이 어우러진 수렴동계곡,  담과 폭포와 단풍 사이 사이 쇠층계길 구곡담 계곡

       

       


    • 소청산장에 바라본 풍경 2003

      구름이 폭포처럼 강물처럼 흘러 금세 호수를 이루고 , 용 이빨 모양의 긴 성처럼 생긴 릉선 (용아장성릉, 龍牙長城稜)이 구름바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늦은 오후부터 해가 저물도록 구름은 용아장성에서 춤을 추었다.  

       

       

      소청산장에서 바라본 용아장성릉(龍牙長城稜) 소청산장에서 바라본 용아장성릉(龍牙長城稜)


    • 설악산 공룡릉 2003

       

      신선암에서 바라본 공룡릉 신선암은 공룡릉선 최고의 전망대이다


    • 설악산 공룡릉 2004

      동해 바다 바람이 공룡릉에 부딪치며 순식간에 구름을 만들어낸다.

      1275봉에서 바라본 풍경 1275봉에서 바라본 풍경

      1275봉에서 바라본 나한봉쪽 풍경 신선암에서 바라본 공룡릉


    • 설악산 공룡릉 2006

      마등령에서 바라본 공룡릉 운해 공룡릉의 산객들

       


    • 설악산 공룡릉 2007

      하늘을 찌르는 바위 봉우리를 하얀 구름이 부드럽게 감싼다

      신선암에서 바라본 공룡릉 소청오름길에서 바라본 공룡릉

      신선암쪽에서 바라본 공룡릉 신선암쪽에서 바라본 공룡릉


    • 비선대 - 천불동 - 대청봉

      비선대 둘레 금강굴 둘레

      천불동 계곡 대청봉


    • 토왕성폭포 2007년 세계 빙벽대회

      토왕골은 좁은 골짜기다. 토왕성폭포 상단폭포 높이 130미터, 하단폭포 80미터.

       



    • 울산바위

      소청 쪽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권금성 쪽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 서북릉

      귀때기청봉에서 바라본 가리봉 대승폭포 서북릉선


  • 설악산을 되돌아보며

    • 생각나는 대로 1 (2003년 6월, 비선대-마등령-공룡릉-천불동)

      설악산 공룡릉선 가는 길 중에 [1]설악동-비선대-마등령-공룡릉선-무너미고개-천불동계곡-비선대-설악동 코스 또는 역코스, [2] 한계령 또는 오색-대청봉-희운각-무너미고개-공룡릉선-마등령-비선대-설악동 코스를 저울질 하다 당일산행 [1]코스로 정하고 속초로 향했다.

      설악동매표소-(1H)-비선대-(3H)-마등령-(5H:공룡릉선)-무너미고개-3H(천불동계곡)-비선대-(1H)-매표소 코스는 약13시간이 소요된다. 13시간은 지도상이고 경치 좋은 곳 사진 찍느라 머무르다보니 15시간이 걸렸다. 매표소 통과 아침7시, 비선대 8시, 마등령 12시 좀 못돼서, 신선대 18시, 비선대 21시, 설악동매표소 22시 도착. 지도상 소요시간에 비해 비선대-마등령 코스와 공룡릉선 코스에서 가각 1시간씩 2시간이 더 걸린 셈이다.

      공룡릉선 코스는 위험하지는 않으나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다. 당일치기 코스로는 좀 긴 코스라 먹거리 마실거리 입을거리를 더 챙기다 보니 배낭무게가 늘어나 더더욱 체력안배가 중요하다.

      금강산은 제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는 반면 설악산은 비경을 안으로 감춰두고 있다고 두 산을 견주기도 한다. 설악 품안에 감춰둔 비경중에 공룡릉선이 으뜸이리라. 옛 시인묵객들 가운데 신선대에 올라 공룡릉선을 바라본 이가 없어서 였는지 그들은 주로 금강산을 노래했다. 오늘 하늘이 허용한다면 공룡릉선의 아름다움을 맘껏 카메라에 담으리...하지만 오전 시계(視界)가 좋지 않았다.

      낮2시경에 공룡릉선에서 마주친 사람 하나. 전날 밤 9시경 한계령을 출발하여 이제 여기에 왔단다. 밤낮 없는 산사람이다.

      신선대근처 바위산에 앉아서 지나온 공룡릉선을 바라본다. 멀리서 보면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릉선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예까지 왔고나. 늦은 오후의 해가 릉선 너머로 기운다. 설악산 공룡릉선을 바라보다 문득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생각난 것은 이곳 풍경이 그 그림 보다 더 몽환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였을까. 평소에 가지고 다니지 않던 술을 이 날은 준비했는데 바로 이 자리에서 마시라는 뜻이었나보다. 술을 한 잔 마신다. 산을 내려가고 싶지 않다. 또 한 잔을 마신다. 늦은 오후의 붉은 해가 눈을 물들인다.

      늦은 오후, 신선봉에서 만난 사람. 신선대에서 마등령쪽으로 공룡릉을 타는 도중에 날이 저무리라. 그 산사람은 1275봉에서 자야겠단다. 험준한 산속에서 혼자 밤을 보낼 작정으로 산을 타다니...

      양폭산장을 지나면서부터 날이 어두워졌다. 손전등을 꺼내든다. 비선대를 한참 남겨놓은 지점에서 남녀대학생 7명이 어둠에 갇혀 주저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오색에서 대청봉을 거쳐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는 팀이었는데...후래쉬도 없고 이동전화는 불통에다 몸은 지쳐있었다. 예비용 헤드랜턴을 배낭에서 끄집어내어 끝에서 2번째 학생에게 씌우고 나는 앞에서 3번째 위치에서 손전등으로 길을 유도하며 걷기시작했는데 속도가 너무 느려 대열이 자꾸 두동강난다. 제일 처지는 학생을 내 바로 뒤로 바꿔가며 한 한시간쯤 내려가니 비선대 불빛이 보였다. 비선대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솔책임자가 날 보더니 혹시 학생들 못봤느냔다. 불빛에 안도하며 뒤처져 따라오던 학생들을 손으로 가리키니 학생들 이름을 불러댄다. 한 여학생은 울음을 터뜨린다. 학생들이여 다음에 산행할 때는 지도, 나침판, 랜턴, 비상 먹거리 입을거리등을 준비하길.

      아침 해는 났으나 시계가 좋지 않았지만 늦은 오후 석양의 뿌연 하늘이 공룡릉선을 오히려 환상적으로 보이게 하였다. 매년 한번씩은 찾아보고 싶은 산 설악 공룡릉선. 
      [2003-07-28 씀] 


    • 생각나는 대로 2 (2003년 10월, 용대리-수렴동-소청-대청-한계령)

      셔틀버스정류장~백담사~영시암~수렴동대피소~쌍룡폭포~봉정암~소청대피소(1박)~소청봉~대청봉~끝청~한계령 코스를 선택했다. 

      고원통~미시령간 46번 국도상의 용대리에서 백담사 쪽으로 꺾어들어 매표소(주차장)에 당도하여 셔틀버스를 타고 4킬로미터쯤 이동하면 백담사 3킬로미터 전방이다. 여기서 부터 본격 산행 시작이다. (2005년 현재 셔틀버스는 백담사까지 운행된다. 단 겨울철 첫눈이 내리면 셔틀버스 운행 중단) 

      백담사 매표소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셔틀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아침08시30분, 3km를 걸어 09시 좀 지나 백담사, 09시30분에 백담대피소, 4.7km를 걸어 11시10분에 수렴동대피소, 5.9km를 걸어올라 14시40분에 봉정암, 0.7km를 올라 15시50분에 소청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디지털사진 파일에 사진찍은 시각이 기록되어 있어 별도 기록을 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이렇게 알 수 있으니 편리한 세상이로다. 느릿느릿 머물곳에서 머물며 걸린 시간이다.

      이튿날 한20분 걸려 소청봉에 오르니 아침 06시, 대청봉에 07시, 끝청에 08시, 4.2km를 걸어 한계령삼거리에 10시30분, 2.3km를 걸어내려 한계령에 12시에 도착하였다. 예정시간 보다 훨씬 더 걸린 것은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밀려서다. 

      봉정암 가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는데 대구 팔공산 갓바위 보다 봉정암 기돗발이 더 잘듣는다는 소문에 대구에서 왔다는 사람 등 전국 각지에서 기도드리려 모여든단다. 4킬로그램쯤 되는 쌀봉지를 각자 메고와 봉정암에 풀어놓고 기도를 드린다. 사업 잘 되게 해달라, 자식 잘 되게 해달라 뭐 이런 기도이리라. 봉정암 숙소는 사람들로 붐빈다. 봉정암에는 석가 진신 사리탑이 있다.

      소청산장의 밤 봉정암쪽이 내려다 보이는 와상. 술마시는 일행과 떨어져 옆자리에 앉은 한 등산객 왈, 이 머나먼 봉정암까지 오는 게 보통일이냐 여기까지 오는 것 자체가 수련이나 마찬가지라 복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부처님도 그 정성은 이해하시겠지. 비록 부처님의 본디 뜻과 다르더라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백담사와 봉정암 둘다 공사중 소음으로 어수선하였다. 봉정암은 참배객이 늘어나 숙소를 더 늘리는 공사를 한단다. 백호가 이 높은 산중까지 올라와 굉음을 내며 열심히 일한다. 저 굴삭기를 헬기로 날라왔나?

      소청대피소 매점에서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는데 웬 꼬마가 왔다갔다 한다. 너댓살이나 됐을까? 이 높은 곳에 웬 꼬마인가하고 유심히 보았다. 이름이 득룡(등용?)이란다. 이 꼬마가 오줌이 마렵다고 하자 소청대피소 주인장이 직접 플라스틱 병을 받쳐들고 거기에 오줌을 누인다. 바로 옆에서 아랫도리를 반쯤 내리고 오줌을 누는 꼬마 눈과 내눈이 마주쳤다. 꼬마는 멀뚱멀뚱 쳐다보다 조금도 쑥스럽지 않다는 듯이 실눈과 왕눈을 번갈아 뜨고 고개를 두어번 젖히는 동작만으로 내 웃음보를 터뜨렸다. 보통내기가 아니로세.

      소청대피소 매점이나 숙소일을 거드는 젊은이들은 그곳 주인장을 대장이라고 부른다. 옛날 산악대장이었나 보다. 아이에게 오줌을 아무데나 누이지 않고 병에다 누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화장실은 매점에서 좀 떨어져 있다.

      소청대피소 매점에서 빈대떡 2장에 막걸리 1병을 시켜 먹다가 벽에 걸린 멋진 산악사진을 발견하고 저게 용아장성이냐 날이 좋으면 여기에서 저런 풍경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빈대떡 부치던 아주머니 '아니 안보여요?' 하며 고개를 빼어 산아랫쪽을 내다보더니 '아니 어느새 구름이 끼었네' 한다. 오전에는 날씨가 좋았단다. 막걸리를 마시다 말고 가끔 주변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하였으니 여기 사진중 용아장성릉과 구름바다 사진은 취중에 찍은 것이다. 평소에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음식이라 주장하곤 하는데 그에 따르면 식사중 촬영이라고나 할까.

      온통 하얗던 구름바다 틈새로 용아장성과 마등령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이곳저곳 와상과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먹고 마신다. 소청산장이 구름위에 둥실 뜬 느낌이다. 막걸리에 얼큰하게 취해 주변을 둘러보니 갑자기 사람들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정적속 별천지에 와 있는 듯 했다. 구름바다 한켠에선 구름이 폭포수처럼 흐르고 용아장성에 걸린 구름은 분화구안의 연무처럼 춤을 추는데 소청산장은 바람 한 점 없는 고요속에 빠져있었다. 이게 꿈결이 아닐런지.

      소청대피소 숙박은 따로 예약을 받지 않고 선착순이다. 가족이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방부터 수십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 방까지 여러개가 있는데 난방되는 방은 오천원, 안되는 방은 삼천원이다. 난방 안되는 방으로 한쪽 끝자리를 달라 했더니 끝자리는 비좁아 잘 수 없다며 가운데 자리를 배정해 준다. 번호를 매길 때 한사람씩 폭을 감안하지 않고 매겨 양끝은 2개번호에 1.5인이 잘수 있는 폭이란다. 게다가 가운데 1인당 폭도 너무 좁아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눈을 뜨니 아직 초저녁 8시 밖에 안되었다. 덥고 시끄러워 잠을 깼다. 누군가 코를 심하게 골았나보다. 난방이 안되는 데도 사람들 열기로 방이 후덥지근하다. 더구나 내 잠자리가 저 아래보다 2단 높은 곳이라 더 덥다. 일어나 앉아 있는데 옆자리 젊은이도 일어나더니 밖에 나가 소주나 한잔 하자며 부스럭부스럭 챙긴다. 자는 사람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을 디뎌 사다리까지 도착. 사다리 타고 내려가 밖으로 나서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방풍웃도리를 챙겨나간 나는 여유있고 반팔차림으로 나온 그 젊은이는 원래 열기가 많아 괜찮단다. 소주 한잔 하며 얘기 나누는 사이에 밤이 깊어가고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바로 이거다. 몸을 식힐대로 식혀 실내로 들어가면 몸이 녹으며 잠들 수 있으리라. 다시 들어간 방은 여전히 후끈했지만 차가워진 몸이라 바로 잠들 수 있었다.

      소청산장 와상에서 소주잔에 산얘기 나누며 용아장성릉을 내려다 볼 적에 밤중인데도 구름바다가 훤히 보인다. 누군가 뒤안으로 가보더니 산장 뒷편에 보름달이 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 전날이 9월 보름이었다.

      새벽에 눈을 뜨고 몇시인지 확인하다 창밖에 달이 구름바다와 용아장성릉 구름잔치를 훤히 비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창은 높이 50cm에 폭 1미터 남짓 되는 조그만 창으로 침상바닥까지 내려붙어 있어 누워서도 아니면 고개만 들어도 밖이 보인다. 새벽까지 달이 보이기에 대청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지리산 세석산장 홀 바닥 잠자리 배정때 남자와 여자 잠자리 구역을 구분하였는데 설악산 소청산장 잠자리는 그런 구분이 없다. 어떤 아주머니가 옆자리 남자에게 왜 자꾸 다가오느냐고 큰소리로 말하자 그 아자씨 조그만 목소리로 비좁아서...라고 얼버무린다. 새벽에는 어떤 이가 일어나자 마자 담배를 피워물어 사람들이 깜짝 놀라 제지하였다. 사람들이 성냥개비 마냥 빼곡히 들어찬 방에서 담배를 피워문 용감한 싸나이. 산장이라는 말과 대피소라는 말을 같이 쓰는데 잠자리는 대피소가 맞도다.

      소청산장에서 아침일찍 컵라면을 먹는 도중 햇반도 얻어먹었다. 그곳에서 산 음식이라할지라도 남기면 죄다. 쓰레기 자루에 그곳에서 산 빈그릇은 넣어도 되지만 남은 음식을 넣으면 안되고 버릴 곳도 없다. 누군가 햇반 반쪽을 건네준다. 고맙게 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음식물 처리 역할도 겸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엉뚱한 생각 너그럽게 봐주시길. 아침식사를 마치고 행여 일출을 볼 수 있을까하고 부랴부랴 소청 중청을 올랐는데 붉게 물들던 하늘도 잠시, 구름이 오색쪽에서 마구 넘어오며 사위는 순식간에 구름속에 파묻혔다.

      끝청에서 한계령 삼거리까지 릉선길을 가는 동안 구름안개 속이라 주변 경관을 볼 수 없었다. 한계령에서 대청봉 가는 등산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와 서로 비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운무가 지나며 나뭇가지에 남겨 놓은 물방울들이 빗방울처럼 툭툭 떨어져 길이 젖었고 그 길가운데 너덜이 많아 미끄럽기 짝이 없었다.

      한계령에서 백담사 입구 주차장까지 어떻게 갈지 사전 정보가 없었다. 택시를 부르든지, 히치하이킹으로 고원통 삼거리까지 가서 택시를 부르든지 할 요량이었는데 막상 한계령에 당도하고 보니 히치하이킹이 여의치 않다. 땀과 운무에 젖어 비맞은 생쥐꼴에다 냄새까지 나니 차 얻어타겠다고 나서는 게 좀 염치없다. 궁즉 통이라 양쪽을 오가는 셔틀 승합차량을 발견했다. 합승으로 일인당 1만원씩인데 둘만 가면 2만원씩이고 혼자가면 3만원이란다.

      10월11일 토요일은 백담사~수렴동계곡~소청산장 길이 비교적 한산하여 고즈넉한 구간도 있었고 소청산장에서 구름잔치까지 보았으니 행운의 날이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튿날인 10월12일 일요일은 소청~대청~한계령 구간 길이 운무에 덮여 풍경을 볼 수 없었고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새벽사이에 대청봉을 찾은 등산객이 엄청나게 몰려 하산길이 지체되었다. 가을단풍 피크때 일요일 설악산은 등산인파로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그날 특히 오색에서 대청봉 거쳐 천불동으로 하산하는 팀은 많이 지체되었으리라. 


    • 생각나는 대로 3 (2004년 9월, 백담사-마등령-공룡릉-백담사)

      공룡릉 단풍이 아직 물들지 않은 줄 알면서도 일기예보상 날씨가 너무 좋다길래 추석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설악산을 찾았다. 용대리 셔틀버스 타는 곳은 예전보다 조금 위쪽으로, 백담사 셔틀버스 타는 곳은 예전보다 많이 위쪽으로 옮겨졌다. 전에는 셔틀버스 종점에서 백담사까지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데 이제는 버스가 백담사까지 바로 올라간다.

      오세암 가는 갈림길은 수렴동대피소 아래쪽과 수렴동대피소 2곳에 있다. 지난해에 보니 봉정암에 기도드리러 가는 이들 가운데는 수렴동대피소-오세암-봉정암 코스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세암 거쳐 마등령 독수리상 있는 곳에 이르니 구름이 산을 덮어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집으로 전화하여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당초 기상청 예보대로 현재 이곳 날씨는 '맑음'이란다.

      마등령에서 1275봉 가는 동안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다 간혹 가야동계곡쪽 산자락을 보여준다. 산행객 없는 산길을 구름 헤치고 1275봉 안부에 닿으니 천화대 둘레 골짜기로 구름이 빠르게 지나며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나한봉쪽도 구름이 걷히며 모습을 드러내고... 나홀로 감상하기엔 너무 아까운 풍경들... 날이 저물도록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산 위쪽 멀리 소청산장의 불빛이 희미해지며 1275봉도 아침을 맞는다. 신선암을 향해 가다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산행객들이 점점 늘어나 줄지어 온다. 신선암에 이르니 무너미 고개에서 올라온 산행객들로 붐빈다. 누군가 속초쪽을 가리키며 저 아래에 구름공장이 있나보다...오늘 하루 공장을 가동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말을 안듣나...하는 우스개 소리에 다들 유쾌하게 웃는다. 바람이 공룡릉에 부딪치며 구름을 만들어내어 나한봉은 구름에 덮여 있고 1275봉은 구름사이로 언듯언듯 모습을 드러낸다. 천화대는 구름에서 벗어나 공룡릉의 자태를 그나마 보여준다.

      무너미 고개에서 가까운 희운각 대피소에 이르니 대만원이다.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 소청봉을 향해 출발. 희운각에서 소청봉 가는 길은 대간꾼들이 대간을 살짝 비켜 돌아가는 구간이기도 하다. 대청봉에서 무너미고개에 이르는 백두대간길을 다니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너미고개에서 바로 수렴동으로 가는 가야동계곡길도 폐쇄되어 있다.

      된비알 층계길 너덜길로 소청봉 올라 사방을 둘러보다 소청산장으로 내려가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신다. 너무 느릿느릿 다니는 게 아닌가 시계를 보며 하산 시간을 가늠해 보다가 그만둔다. 계산해보았자 달라질 것 없어서다. 옆자리에는 며칠동안 사진촬영 나왔다가 오늘 돌아가는 길인지 몇 사람이 카메라 배낭을 내려놓고 술마시며 시끌벅적하다.

      소청산장의 꼬마가 내 테이블로 놀러왔다. 꼬마는 나를 몰라보겠지만 나는 꼬마를 안다. 이름을 알면서도 다시 물어봤다. 득룡이 아니면 등용이라 생각했는데 아이 발음은 동영이에 가깝다. 아니 덕룡이 일지도 모르지. 장남감 헬리콥터를 갖고 놀며 헬리콥터 조종사가 되겠단다. 헬기로 산을 한바퀴 돌고 오랬더니 마당을 한바퀴 돌고 금세 다시 돌아온다. 천천히 비행하고 돌아오도록 몇 번 주문한다. "너 초코렛 먹을래?" "고맙습니다." 여느 꼬마와는 달리 단 한마디로 줄여 대답한다. 초콜릿 사탕봉지를 건네주니 먹지는 않고 헬기에 싣기도 하며 가지고 논다. 막걸리를 다 마시고 사진을 찍기 위해 화장실쪽으로 갔다. 뒤따라온 꼬마가 코를 막으며 "이게 무슨 냄새지?" 한다. 내가 "구수~한 냄새로구나" 라고 했더니 꼬마 曰 "구수하긴 뭐가 구수해 똥~냄새지." 그래 네 말이 맞다. 이 아이한테 선기(禪機)가 있는 걸까. 허를 찔린 내가 파안대소하자 옆 와상에서 책을 읽고 있던 여자 산행객도 따라 웃는다. 꼬마가 그 여자산객이랑 얘기 나누는 동안 내가 지나가며 꼬마 머리를 슬쩍 쓰다듬는 걸로 작별인사를 대신한다.

      소청산장에서 봉정암으로 내려가는 길에 한 외국 여성 산행객과 마주쳤다. 나홀로 외국인 여성 산행객을 어제도 한 명 봤는데 오늘도 보네. 설악산이 유명하긴 유명한 모양이다. 내가 '하이'하고 인사를 건네자 거의 동시에 '안녕하세요'와 미소가 되돌아온다. 한국말 잘 한다고 말을 건네자 우리말을 더 이상은 못 알아듣는다. 공룡릉에서 사람이 드문 시각에는 서로 스치며 산인사를 나눴는데 무너미고개에서 소청봉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산행객이 많아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봉정암에 거의 다 갔을 즈음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막걸리도 술이라 약간의 취흥(醉興)이 일었고 소청산장의 그 꼬마로 인해 나도 모르게 선흥(禪興)이란 게 있다면 그런 게 일은데다 조금 전 젊은 외국인 처자의 미소를 보고 그 자연스러움이 부러워 여러 상념에 빠져 있었던 탓이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 없이 손바닥에 생채기만 났다. 지혈을 하고 다시 일어서며 내가 산길을 가고 있음을 잊지 않기로 한다. 산에 충실하기로 한다. 다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지만...

      봉정암 사리탑에 이르니 한 비구니와 신도 몇이서 사리탑에 절을 하고 있었다. 한 여자가 '무슨 무슨 佛'하고 선창하면 다른 이들은 후렴구를 붙이며 일배 일배 부일배한다. 여기서 배는 막걸리잔의 배(盃)가 아니라 참배의 배(拜)다. 념불 소리에 애절함이 배어 있어 탑 둘레에 숙연함이 감돈다. 저리도 간절히 바라는 바가 무엇일꼬?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르는데...

      설악산이 나를 두번 울리는(感動시키는) 구나. 지난해 여름 신선암에서 바라본 해거름의 공룡릉과 오늘 여기 봉정암 사리탑과 념불소리가 그것.

      봉정암 사리탑 뒤쪽 언덕에서 용아릉을 바라본다. 어떤이가 용아릉을 건너오다 벼랑위에 돗자리를 펴는 모습이 보인다. 저 험한 곳에도 길이 있다니...

      해가 기운다. 봉정암에서 가야동계곡으로 내려가는 산행객은 없었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산행객은 간혹 눈에 띄었다. 가야동계곡에 이르니 산행객 몇이 쉬고 있다. 계곡을 가로질러 오세암으로 가는 길에서 여자 산행객 셋이 나를 앞질러 간다. 산길이 고개를 몇 개 넘으며 이어지다 보니 고갯마루에서 다시 마주친다. 그들의 작은 배낭속에서는 과일도 나오고 초콜릿도 나오는데 덩치 큰 내 배낭에서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 그들은 오세암에서 머물 예정이란다. 시간이 늦었지만 오세암 스님 가운데 잘 아는 분이 있어 밥과 잠자리는 해결될 거란다. 오세암을 지나며 보니 한 방문앞에 등산화가 즐비하다.

      오세암 지나 백담사 가는 산길에 접어든지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랜턴을 켰다. 숲속이라 들판보다 빨리 어두워진다. 드디어 수렴동 계곡과 만나는 갈림길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는 길도 넓고 거의 평지길이다. 가까운 수렴동대피소로 올라갈까, 좀 멀지만 백담대피소로 그냥 내려갈까 망설이다 백담대피소를 향해 출발했다. 백담사에서 용대리 가는 버스는 이미 끊겼다. 몸이 피곤하니 백담대피소 가는 길이 멀기도 하다. 한데잠 잘 수 있는 장비가 있으니 아무데서나 자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핸드폰이 터지지 않아 오늘 집에 못간다고 연락할 방법이 없다. 원래는 오늘 귀경할 예정이었는데 막걸리 마시고 너무 느릿느릿 다니다 보니 산중에서 밤을 맞게 된 것.

      지친 몸을 이끌고 백담대피소에 당도해보니 건물 입구 홀에서 술마시던 산꾼 셋이 반갑게 맞이한다. 처음 보는 그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몇 잔 연거푸 마시고 나니 생기가 돈다. 그들은 어제 수렴동대피소에서 자고 오늘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하여 구곡담-소청-무너미고개-공룡릉-마등령-오세암을 거쳐 백담대피소에 조금전 도착했단다. 그들도 나처럼 버스를 놓쳐 귀경이 하루 늦춰진 것이다. 백담대피소 옥수수냄새 나는 막걸리 맛이 좋다. 여러 병 비우도록 얘기를 나누고 있자 백담대피소 할아버지가 잠자는 사람들을 위해 밖에 나가서 마시란다. 그제서야 초저녁 잠자리에 든 사람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백담대피소 2층에서 나홀로 잤다. 다들 1층에서 잔다. 냉방이지만 한데잠 자는 장비를 펴놓고 잘 잤다. 아래층과 건물 앞뜰은 새벽부터 산행준비하는 사람들로 부산하다. 이른 새벽에는 매점이 문을 열지 않아 다들 버너로 불을 지펴 아침을 지어 먹는다. 락앤락에 누룽지와 물을 넣어 놓았다가 아침을 때우고 첫버스를 타기위해 백담사로 출발한다. 백담계곡에 아침 안개가 피어 오른다. 용대리에 '백두대간보호법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한 두 마디 더

      경험있는 리더도 없이 용아릉을 타던 산객들이 구조요청을 하여 헬기로 구조하였는데 1인당 50만원씩 벌금을 물었다고 어느 산객이 말했다. 용아릉은 정규 산행로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용아릉을 타고 온 사람을 봉정암 사리탑께에서 만났는데 그는 배낭도 없고 빈손이었다. 그는 용아릉 타는데 자일이 필요없단다. 밧줄이 매달려 있고 우회길도 있단다. 수렴동쪽에서 올라오는데에 8시간, 수렴동으로 내려가는데 6시간 정도 걸린다고 들었는데 물도 없이 빈손으로 건너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2004-11-18 씀] 


    • 생각나는 대로 4 (비룡폭포, 2005년 1월)

      2005년 1월 속초에 머무는 동안 큰눈이 내렸다. 며칠 뒤 단체로 설악산에 잠시 다녀오게 되어 다들 비선대나 울산바위쪽으로 가고 단 두 명만 비룡폭포쪽으로 갔다. 비룡폭포 보고 돌아오는 길에 문을 연 한 가게에 들렀다. 올라갈 적에 그 가게에서 호객하던 몸짓에 웃음보를 터뜨렸던 터라 내려올 적에 자연스레 그 집에 들르게 된 것. 추위를 무릅쓰고 가게 앞 야외 식탁에서 막걸리를 마셨는데 금세 막걸리에 살얼음이 언다. 

      왜 그리도 손님을 반갑게 맞이했는지 이윽고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폭설이 내리는 동안 차양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밤새 눈을 털어냈고 폭설 뒤에는 산길과 야외 식탁 눈을 치우느라 엄청 고생했는데 그 간 아무도 비룡폭포를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폭설 뒤 첫 손님이란다. 그저 지나는 길손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렸던 님을 만난 듯 우리를 대하는 모습에서 그간의 고생과 적막감이 짐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얘기가 오간다.

      2004년 수원의 최모씨가 설악산에서 실종되었을 때 경찰 조사에 응했던 일, 20여일 후 한 산행팀이 소토왕골에서 잠시 쉬는 동안 이상한 냄새가 나서 실종자를 우연히 찾게 되었던 일, 이 가게는 신흥사 소유로 울산바위쪽 가게 등과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영업을 한다는 것, 설악산에 도토리 막걸리라는 게 없다는 것...

      수년전 울산바위 가는 길목에 있는 한 가게에서 도토리 막걸리를 너무나 맛있게 마신 적이 있어 그 다음에 직장 동료와 후배들을 데리고 다시 그 가게를 찾았는데 도토리 막걸리가 없단다. 도토리 막걸리를 판 적도 없다는 것이다.

      내 얘기를 듣더니 몇 년 전 얘기냐고 물으며 그건 도토리 막걸리가 아니고 막걸리에 콜라를 탄 것이라고 알려준다. 몇년전에는 비룡폭포쪽이 아니라 울산바위쪽에서 가게를 했단다. 그렇다면 가짜 도토리 막걸리를 판 사람이 혹시 이쪽 가게 팀? 너털웃음 끝에 허허로움이 남는 것은 속았다는 사실보다 도토리 막걸리가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추위에 떨면서도 오래 산얘기 나누던 그 때만큼은 사바세계를 다 잊고 순수의 시절로 돌아갔던 것 같도다. 
      [2007-02-20 작성]


    •  생각나는 대로 5 (2005년 가을, 장수대-대승령-귀때기청봉-한계령)

      장수대 주차장에 주차하고 입산료 내고 산을 오른다. 운무가 산을 비껴 난다. 줄곧 오르막에 쇠사닥다리가 간간이 걸려 있다. 대승폭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승폭포는 물줄기가 가느다랗다.

      산객들 거개가 대승령에서 십이선녀탕쪽으로 간다. 귀때기청봉으로 떠나는 산객은 드물다. 서북릉이라는 이 산등성이에는 부드러운 흙길도 있지만 너덜이 많고 밧줄 걸린 된비알도 있다. 예상보다 산행시간이 더 걸려 귀때기청봉에 다다랐을 때 날이 저문다.

      귀때기청봉을 눈앞에 두고 다리에 근육통이 왔다. 느린 걸음으로도 한 중년 부부를 앞지른다. 그 부부는 장수대에서 귀때기청봉 거쳐 한계령으로 가는 길인데 지아비가 지쳐 걸음이 더디자 지어미도 다른 식구들을 앞서 보내고 뒤로 처진 것이었다. 걱정되어 물어보니 보온 의류도 없고 손전등도 없다.

      오늘 산행에서 중청 아니면 끝청 어디쯤까지 가겠지 했었는데 고작 귀때기청봉까지 왔다. 느긋하게 걷다가 날 저물면 그곳에서 머무를 셈으로 배낭을 꾸리면 배낭이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배낭이 무거워져 내 체력으론 오히려 하루 산행거리가 줄어든다. 혼자일 줄 알았는데 밤바람 부는 귀때기청봉에 젊은이 둘이 올라와 머문다.

      새벽 한계령에서 올라온 산객들로 귀때기청봉이 갑자기 소란스럽다. 몸만 잠자리에서 벌레처럼 빠져나와 삼각대 거치하고 일출 사진을 찍는다. 대청쪽 하늘이 잠시 붉게 물들고 가리봉 둘레 구름바다 위로 형형색색의 구름이 빠르게 흘러간다. 산객들은 귀때기청봉에서 한동안 머무르며 차를 마시기도 하고 아침식사를 하기도 한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귀때기청봉에 머무르다 한계령 삼거리쪽으로 떠났다. 처음 뜻한 바와는 달리 코스가 아주 짧아지지만 한계령으로 하산하기로 이미 마음을 굳혔다. 이쪽 길에도 너덜겅이 많다. 한계령 삼거리 못미처 잘룩이에서 일단의 산객들이 계곡길로 하산한다. 그 길이 한계령 가는 길과 만난다기에 무턱대고 따라나섰다. 조금 가다보면 한계령 가는 길과 만나겠지 했는데 산을 다 내려가도록 외길이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골짜기는 도둑바위골이었다.

      앞서 가던 그 팀이 44번 국도로 올라서기 직전 황급히 되돌아 온다. 먼저 국도로 올라간 이가 국립공원 지킴이가 있다고 연락해 왔단다. 들키면 한 사람당 50만원씩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데 그 팀에는 중국교포들까지 상당수 들어 있었다. 리더가 길도 제대로 없는 험한 산등을 향해 치고 오르고 그 팀은 유격대처럼 뒤따른다. 나는 그냥 혼자 남아 먹을 거리를 펴놓고 조금 때이른 점심을 먹었다.

      한참 뒤 그 팀이 다시 나타났다. 국립공원 지킴이가 자리를 떴다는 연락을 받고 되돌아 온 것이었다. 굴다리를 지나 국도에 올라서니 길가에 주차해 놓은 차량들이 많다. 그 팀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돈 굳었다고 희희락락한다. 50만원을 벌었다는 착각에 나도 악동처럼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이번 산행에서 설악산에 미안함을 남겼도다. 뜻하지 않게 정규 탐방로가 아닌 길로 하산하였다. 서북릉에서 스틱이 부러져 배낭 옆구리에 찔러넣고 다녔는데 산을 내려와 보니 없어졌다. 비박은 어쩔 수 없을 경우에만 해야하는데 어느 정도 의도된 비박을 했다는 것.

      헌데 큰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이 비정규 산행로로 설악산을 휘젓고 다니기도 하더라.

      히치하이킹으로 장수대까지 내려갔다. 한 사람이 짚차 짐칸으로 넘어가며 좌석 하나를 마련해주는 파격적인 대우에 몸 둘 바 모르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이 든 분들이었는데 유쾌하게 여행하는 모습도 멋져 보였다. 
      [2006-06-14 작성]


    • 생각나는 대로 6 (2006년 9월, 백담사-오세암-공룡릉-천불동)

      설악산 날씨가 주말마다 좋지 않더니 오랫만에 주말 설악산 날씨가 좋다는 기상청 예보가 나왔다. 새벽에 짐을 꾸리느라 출발이 늦어져 산행 들머리를 설악동에서 백담사로 바꾼다. 토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백담사행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산객들이 많아 버스가 여러 대 떠나고 나서야 차에 오를 수 있었다.

      2006년 9월 현재 인제-한계령-양양을 잇는 44번 국도에서 한계리~한계령 구간은 지난 여름 폭우 피해때문에 통제되고 있다. 

      백담산장은 문을 닫아 찾는 이 없이 쓸쓸하다. 수렴동 숲에는 지난 여름 폭우 때 떠내려온 나무들이 아직도 걸려 있다.

      오세암 바로 앞 고개에서 만경대에 다녀온다. 쉬어가는 산객들에게 만경대를 물으나 아는 이 없고 길잡이 팻말도 없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 나섰는데 짐작대로 만경대에 제대로 올랐다. 풍경이 좋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왔다갔다하다보니 3시간 남짓 머물고 말았다.

      오세암 지나 된비알 올라 마등령 독수리상 있는 곳에 다다르니 백두대간 서쪽과 달리 동쪽 설악골은 구름을 가득 채우고 바다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마등령에서 구름 바다 구경하는 사이에 날이 저물고 말았다.

      마등령 독수리상 있는 데서 물을 구하려면 오세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등령에서 넘어오는 길 사이에 있는 계곡길로 십여분 내려가야 한다. 그 계곡물까지 길이 나 있고 가까이 다가가면 물소리가 들린다.

      마등령에서 신선암 가는 길에 금강초롱, 등대시호, 솜다리 등 다른 데서 보기 어려운 꽃들을 만났다.

      공룡릉 최고의 전망대 신선암에서 한참 머무르다 무너미 고개로 내려선다. 길가에 뱀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들고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돌멩이를 던지니 돌멩이를 물 듯한 몸짓을 한다.

      천불동은 지난 여름 폭우에도 한 군데만 빼놓고 쇠다리들이 온전하다. 양폭산장에서 따뜻한 음식을 시켰다. 비록 라면에 햇반이지만 여섯 끼 만에 먹어보는 따뜻한 음식이다. 가격이 좀 비싼 것은 짐 날라오는 게 힘들어서다. 요즘엔 헬기로도 먹을 거리를 날라오기도 한단다.

      당초 계획과 달리 설악동으로 하산하게 되었는데 설악동에서 백담사 입구 용대리까지 택시비가 3만5천원이란다. 미시령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3만원이었는데 통행료 2천8백원을 붙여 인상했단다. 시간 거리가 짧아졌고 연료비도 덜 들 것이니 이전대로 택시비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으나 ... 왕복 통행료가 5천6백원이라...

      미시령 터널이 뚫리고 나서 길이 새로 나는 바람에 학사평쪽 두부집들 장사가 잘 안된단다. 통행료도 아끼고 좋은 경치도 즐길겸 승용차들이 옛길을 이용하는 바람에 미시령 휴게소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설악동에서 미시령 터널을 지나 백담사 입구까지 택시로 30여분 걸렸다. 백담사 주차장 주차비가 지지난해에는 첫날치만 받았는데 이번에는 하루 4천원씩이다. 
      [2006-09-10 씀] 


    • 생각나는 대로 7 (설악산 토왕골, 권금성, 2007년 2월)

      2007년 2월 3일부터 2월 4일까지 열리는 설악산 눈꽃 축제 부대행사로 토왕성폭포 국제빙벽등반대회가 열리고 일반인들도 토왕성폭포에 다녀올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설악산으로 향했다.

      설악동 가는 길가 전광판에 강풍주의보로 빙벽등반대회가 취소되었고 입산금지라는 문자가 깜박인다. 먼 길을 달려왔는데 이럴 수가... 혹시나 하고 설악동 매표소에 문의하니 산에 들어갈 수 있단다.

      당일주차료 4천원(소형) 내고, (국립공원 입장료가 2007년부터 폐지되어 그냥 들어가나 했더니) 매표소에다가도 문화재관람료 2천5백원을 낸다. 지난해에는 입장료 1천6백원, 문화재관람료 1천8백원을 합쳐 3천2백원이었다.

      이른 아침 설악동에 드니 새벽달이 저항령을 넘는다. 비룡폭포나 토왕성폭포에 해가 들기에는 너무 일러, 아침 8시 첫 케이블카 (왕복 8천원) 타고 권금성에 다녀온다. 토왕성폭포 가는 길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비룡폭포 위 산길부터는 가다서다를 되풀이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권금성에 다녀오지 말고 바로 토왕성폭포로 갈 것을... 특히 토왕성폭포가 가까워질수록 가파른 어름 비탈에 설치된 가느다란 줄에 여러 사람이 매달려 오르내리느라 멈춰서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여름에 물이 불어나면 다니기 어려운 위험 코스로다. 물론 여름이건 가을이건 일반인에게는 개방되지 않는 탐방로이지만.

      빙벽등반대회가 열리는 하단폭포는 높이 80미터, 상단폭포는 높이 130미터란다. 하단폭포 바로 코앞에서는 상단폭포 윗부분만 보인다. 대회가 열리는 한켠에서 어묵국물을 공짜로 나눠주고 하단폭포 입장객에게 나누어준 번호표를 추첨하여 경품을 준다. 내 번호도 당첨되어 상품권을 뽑았더니 오징어다. 하산 첫번째 가게에서 오징어 10마리가 든 상자를 받았다. 
      [2007-02-20 작성] 


    • 생각나는 대로 8 (백담사-마등령-공룡릉-소청-구곡담계곡-백담사, 2007년 10월)

      금·토요일 설악산 날씨가 좋지만 일요일은 날씨가 궂을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금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배낭을 꾸렸다. 출근시간대라 양평가는 길이 밀릴지도 모른다. 서울-춘천-홍천-인제 코스가 무난하겠지만 시간을 좀 더 단축해볼까 하고 춘천에서 오음리 지나 양구로 가는 길을 골랐다. 소양댐을 끼고 휘도는 옛찻길 안쪽에다 터널을 뚫고 있다. 터널이 다 뚫리면 춘천에서 양구 가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겠다.

      평일인데도 백담사 입구 주차장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가득하다. 셔틀버스 승차장이 저 위에서 주차장 바로 옆으로 내려와 편리해졌다. 오세암 가는 길에는 봉정암 가려는 할머니 아주머니가 줄 지어 올라 산행시간이 늘어난다. 그 분들 대부분은 오늘 오세암에서 하룻밤 지내고 내일 봉정암에 오르리라.

      지난해 수해 이후 설악산 길이 많이 정비되었다. 수렴동 계곡길에도 여러 곳에 목재 길과 돌길이 새로 놓였고 오세암에서 마등령 오르는 길에도 쇠사닥다리와 돌길이 놓였다. 심지어 공룡릉선에도 돌길과 줄난간이 놓여, 전에 비해 다니기 수월해졌다. 난간의 줄도 쇠줄이 아니라 전기가 통하지 않는 재질이다. 그날도 헬기가 하늘에서 산길 곳곳에 돌멩이와 목재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공룡릉 산길 정비는 곧 마무리될 것 같다.

      마등령 독수리상이 있던 곳 둘레에 난간이 서고 돌길이 깔렸다. 어둠 내리는 공룡릉을 갈데까지 가보기로 한다. 도중에 날이 저물어 그럴듯한 비박지를 고를 만한 시간 여유가 없다. 비탈진 곳에 돌을 괴어 하룻밤 지새고 아침에 보니 침구가 아랫쪽으로 밀려 내려가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공룡릉을 천천히 걷는다. 1275봉 꼭대기에도 올라가 보고 1275봉 옆 봉우리에도 올라가 보았다. 설악골이 발 아래 아득하게 펼쳐지고 범봉이 이웃하여 우람하게 솟았다. 이삼 일만 지나면 공룡릉 단풍이 절정이겠도다. 신선암 가는 길에 1275봉을 뒤돌아 보니 맑은 하늘에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구름이 공룡릉을 휘감고 노닐다가 끝내는 공룡을 송두리째 감싸고 만다. 속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공룡릉에 부딪치며 구름을 만들어 내는 광경을 이미 몇 번 본 바 있다.

      희운각 매점에서 데워주는 컵라면과 햇반으로 배를 따뜻하게 채운다. 희운각 매점에서는 과자류 등 산행 도중 먹을 거리를 다양하게 갖춰놓고 있었다. 약초로 빚은 술은 1만 몇천원, 360ml 정도 플라스틱병소주는 7천원, 막걸리는 없었다.

      소청을 오르는 동안 공룡릉과 천불동, 화채봉에 구름이 넘나든다. 저녁 햇살을 받아 부드럽게 빛나는 구름들이 공룡릉 둘레를 헤엄치듯 돌아다닌다.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다 아예 배낭을 내려 놓는다. 지나던 산객들도 덩달아 멈춰서서 사진을 찍어댄다. 이번 공룡릉은 내게 그 아름다움을 다양하게 보여주는구나. 누구에겐지는 모르지만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인다.

      소청봉에서 석양에 비끼는 산객들, 소청산장에서 귀떼기청봉 꼭대기를 넘는 해를 바라본다.

      소청산장의 밤은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하다. 소청산장 매점에서 빈대떡을 부치지 않는다. 막걸리도 산길 보수하는 사람들이 다 가져가서 떨어졌단다. 하나에 4천원짜리 캔맥주가 막걸리를 대신하는구나. 이젠 추억속에서나 소청산장 막걸리에 빈대떡을 되새김질하는 수밖에... 산장에서 샘까지 1백5십미터 거리라, 2천5백원짜리 생수를 여러 병 사서 밥을 짓는 산꾼들이 많았다.

      올 10월부터 소청산장도 인터넷예약제로 바뀌었다. 혹시나 하고 현장에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는다.

      전에는 선착순이었지만 이제는 예약해 놓고 오지 않는 사람을 일일이 파악한 후에야 대기자들에게 방을 배정한다. 운 좋게 5천원짜리 방을 배정받았다. 난방 되는 방에서 하룻밤 자는데는 7천원, 이불 임대료 별도. 새벽에 보니 산장 홀 맨바닥에도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드디어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봉정암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에서 한참을 머물렀지만 날씨예보대로 해가 나지 않는다. 봉정암 사리탑께서부터 해가 간간이 얼굴을 내밀더니 구곡담계곡을 지날 때는 제법 해가 났다. 사흘전 예보가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이라. 요즘 하루 뒤 날씨예보가 틀리는 경우가 많다. 날씨예보에 따라 멀리 지방산을 찾았다가 비가 내려 헛탕치는 경우도 생긴다.

      백담사 셔틀버스 타려는 사람들이 백담사 다리 수심교 중간까지 두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셔틀버스 타고 선계에서 사바세계로 내려간다.  [2007-10-19 씀] 


[2012-03-06 티스토리로 통합 재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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